2021년 6월 16일 수요일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공감 안 되는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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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넓게 건드리니 오히려 반발심이 생기는 것 같은데 그냥 자영업자 기준으로 한탄 정도만 정리를 해도 되지 않았을까.

 

일단 공감되는 부분은

 

1. 최저임금


최저임금 인상 자체는 나도 찬성하는 쪽이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지나치게 확 올려 버리고 말았다.

어떻게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싶었겠지만 코로나가 터졌다. 모임이 금지되고 소비가 줄고, 실직자가 대량 발생했다. 이 상황에서는 높은 최저임금이 방해가 된다.


2018년에 16.4퍼센트, 2019년에 10.9퍼센트가 올랐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진 2020년에는 2.9%만 올랐다. 그리고 2021년은 그보다 낮은 1.5%가 오른 것이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를 고려해서 조정을 했다고는 볼 수 있지만 이미 2차례에 걸쳐 10% 이상씩 팍팍 올렸기 때문에 인상폭이 적어도 부담을 따라잡지 못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또 내릴수는 없었겠지. 그러니까 그게 문제다. 미래를 생각 안 하고 그냥 저지르고 만거다.

 

2. 공무원 수를 너무 늘렸다.

 

공무원은 필요 분야에는 늘려야 할 필요성도 있고 체급을 줄여야 하는 곳은 줄여야 할 필요성도 있긴 한데 이 역시도 갑자기 많이 늘린거다. 뒷일을 생각 안 하고 말이다.

 

3. 일자리의 질이 낮아졌다.

 

국가에서 주도하는 생계형 일자리는 솔직히 일이란 개념으로 봐야 하나 싶을 정도다. 만족도가 없다. 이 일을 해서 내가 얼마만큼 장래에 도움이 되느냐, 혹은 내가 이만큼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내가 쓸모 있는 일을 한다 라는 그런 느낌이 없는 일자리다.

 

당장 돈이 급한 사람에게는야 감지덕지한 일자리이지만 문제는 이런 일자리를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평가절하하기 쉽다는 점이다. 기준이 낮아진다. 나는 이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다 라는 그런 자신감이나 목표치가 세워지지 않는다.



공감 안 되는 부분은


1. 시급 6500원을 받고 일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해하는 서민들

 

내가 위에서 정부 주도 생계형 일자리가 쓸모 없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기준이 낮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거기서 만족해 버리면 그 위가 없는거다.

 

근데 이 사람은 "6500원 받고 일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해 하는 서민들" 이란 표현을 썼다. 그래놓고 정부 주도 생계형 일자리를 비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왜냐. 생계형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해 하는 서민도 있기 때문이다. 난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있긴 있지. 그런데 그건 상승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는거다.


최저임금도 못 지키는 사업장에서 착취당하다가 골병만 들다 버려지는 것 보다 차라리 최저임금은 꼬박꼬박 주는 생계형 일자리를 찾는건 당연한거다.  최저임금 논란에 항상 나오는 이야기지만 최저임금 제대로 안 주는 곳이 엄청 많다는 거다.


여기서 연장되는게 바로 공무원 시험 응시생. 즉 공시생이다. 해당 연설에서도 언급하지만 젊은 청년들이 죄다 공시만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근데 그게 왜 그런가? 안정성 때문이다.


한때 이런 문제가 사회에 심각하게 대두된 적이 있다. 무급인턴. 일만 죽도록 부려먹다가 정직원 채용을 안 하는 행위다. 아예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곳에 데이고 나면 그때부턴 중소기업에 부정적인 시각만 남게 된다. 그런데도 무급인턴이라도 하려던 사람들이 많았다. 왜냐. 경쟁이 심하니까.


좋은 중소기업, 대기업의 경쟁률은 높고, 질낮은 중소기업의 경쟁률은 낮다. 금방 때려치고 자리가 남아 들어갈 수 있으니까. 좋은 곳은 경쟁이 심하고 나쁜 곳은 경쟁이 낮다.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젊은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가지 않으려는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다. 낮아도 너무 낮다. 회사 상태, 급여, 노동강도, 회사문화 등 총체적으로 나쁘다. 

 그렇다고 공무원이 더 나은것도 아니다. 급여와 노동강도는 진짜 말할것도 없이 최악이다. 그런데도 청년들이 공무원 되겠다고 뛰어든다. 왜냐. 안정적이니까.


이 회사 과연 살아 남을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며 일하다가 회사 망하고 나면 다시 이 기업 저 기업 기웃거리며 시간을 버리는 것 보다 공무원이 되는게 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망하고 재취업하려면 또 경쟁하고 또 경쟁하고 반복을 해야 하는데, 공무원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은 시험이기에 공정하다는 감각이라도 있다. 성적순으로 나누고 떨어뜨리면 할 말이 없다. 정량화 되어 있기 때문에 불공평하다는 감각이 적다. 그러나 회사의 채용 과정은 대기업처럼 시험을 보는 곳이 거의 없기에 그나마 테스트를 해 보는 곳이 있지만 테스트도 할 수 없는 곳은 이력서가 전부다. 그리고 청년들의 불만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이력서다. 

 

이력서 잘 쓰는 법과 관련된 책이 주르륵 나올 정도로 과거 한때는 정말 이력서 열풍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책이 시장에서 잘 나오지 않고 대신 공무원 시험 책이 더 인기다. 왜냐. 이력서에 적어 넣어야 할 것은 실무에서 자신이 얼마나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느냐인데.


뽑지 않음 -> 취업이 안 됨 -> 경력 없음 -> 이력서에 넣을게 없음 -> 그외 잡다한 것을 넣음 -> 탈락 -> 취업이 안 됨 -> 경력 없음 -> 반복이다.


회사가 원하는건 경력직인데 문제는 경력을 쌓을 수가 없고, 이력서엔 내용이 부족하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고, 그런데 어떤 이는 가족,친척,인맥 빨로 경력을 만들어서 넣고. 자기는 못 넣고. 이것을 깨달아 버린 사람은 이 구조가 비정상이라는 것을 느끼고 공시를 지원 할 수 밖에 없는거다.


요점은 공정성이다. 공정하다고 느끼지 못 하니까 공정하다고 느끼는 곳으로 가는거디. 안정성과 공정성이다. 90년대와 2020년대는 다른데 90년대 감각으로 중소기업이라도 가서 벌어야지 라고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그럴싸한데 실리적으로는 통용되지 않는다는거다.


그래서 6500원을 받고 일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해하는 서민들이란 표현을 써선 안 되는거다. 딱히 기쁘고 감사해야 할 일은 아니거든. 내가 일해서 번건데 왜 기쁘고 감사해야 해? 돈을 더 준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최저임금보다 더 챙겨준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만 나는 발언이다. 게다가 공무원은 심지어 최저임금보다도 낮은 돈을 받는데 최저임금 받고 일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해 하는 서민들이란 표현은 어딜 봐도 외통수다. 그런식으로 말하면 최저임금보다도 낮은 임금을 받는 자리를 노리는 공시생 청년들이 사회적 문제라고 말할 수가 없어.


2. 자영업 투정

 

다수의 자영업자들의 탈락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 현상 이전의 상황은 바로 갓물주로 대체 할 수 있다.


자영업자가 많아지니 건물주가 갑이 된다. 자영업을 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물 좋은 곳의 가게는 희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또 평가가 뒤바뀌었다. 코로나 때문에 폐점한 가게가 늘고 공실이 늘어나니 갓물주란 호칭이 쏙 들어갔다. 그런데 꼭 코로나 때문에 폐점 했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


골목식당이란 프로그램. 쇠락해 버린 가게를 되살리는 취지의 프로그램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인터넷과 배달 앱이 나온 이후로 질 나쁜 가게의 정보를 숨기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맛집이 멀리 있어서 가기 힘들다거나 어디에 있는지 입소문에 의지해야 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잘 되는 가게는 잘 되고, 안 되는 가게는 안 되는 구조가 심화되었다.

 

그런데 음식 자영업이란건 객관화가 상당히 힘들다. 자영업이란 말처럼 영업도 해야 하고, 조리도 해야 한다. 영업은 말 그대로 상품을 팔기 위한거다. 홍보도 해야 하고, 전략도 짜야 하고, 차별화도 해야 하고, 강점도 가져가야 하는 물건을 파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영업을 해 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전략 부재가 따라간다.

 

그래서 골목식당이란 프로가 인기를 끄는거다. 전략성을 누군가 채워 주지 못 하면 살아남지 못 하는 자영업이 많다는 이야기니까. 애초에 연설한 사람도 인터뷰에서는 자영업이 많다고까지 했다.


근데 주 52시간과 최저임금을 문제로 삼는건 사실 연관이 안 된다.


왜냐. 지금 음식 자영업에 무인 키오스크, 무인 계산대를 쓰는 곳이 많이 늘어났다. 즉 무인 키오스크 = 일자리 감소이며 시간에 관계 없고, 최저임금에도 연관이 없다. 음식 자영업조차 몸집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며 인건비를 낮추려 한다.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이게 주 52시간과 최저임금 때문에 키오스크를 쓰게 된 것일까? 아니다. 도입 시기의 영향은 있겠지만 때문이라고 까진 할 수 없다. 왜냐. 키오스크를 씀으로서 얻는 이점이 크다고 판단되면 당연히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것이기 때문이다.


52시간과 최저임금으로 벌이가 줄어들어 씀씀이도 줄어들었다 라고 하기에는 배달앱과 1인 소비는 늘어났고, 연설에서도 나왔지만 배달의 민족 덕분을 봤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배달의존도가 늘어난거다. 그리고 앞으로도 늘어날거다. 왜냐. 요리를 하는것보다 사 먹는게 더 편하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영업은 수가 많고 서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52시간과 최저임금 때문에 수익이 줄어들었다기 보다는 자영업이 많아서 서로 파이를 쪼개먹고 있다고 봐야 한다. 더욱이 똑똑한 자영업자 중에는 코로나 특수를 이용하여 오로지 배달 전문으로만 운영하는 곳이 있다보니 파이는 점점 쪼개질 뿐이다.


게다가 김영란법 언급은 또 뭔가? 김영란법 때문에 공무원 관련 소비가 뚝 끊겼다고 투정해 놓고 공무원 너무 많이 뽑는다고 투정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문제 삼을거면 공시생이 몰릴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문제 삼던지 김영란법만 문제 삼던지 해야 했는데 둘 다 문제 삼으니까 아귀가 안 맞는거다. 김영란 법을 해결하게 되면 공무원이 많은게 이득이다. 공무원 수가 늘어나는 걸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 김영란 법을 해결하지 않을거면 공무원 수는 늘어나든 말든 실질 차이는 없다. 공무원이라고 해서 개인 소비를 안 하나? 당연히 한다. 그런데 공금 아니면 소비를 안 한다. 김영란법 때문에 공무원 관련 소비가 끊겼다 라는 사족을 붙일 이유가 없다.


카드 수수료는 각자의 이권 싸움이다.


자영업은 그냥 수수료 자체가 부담이고

카드사는 밴 업체에 부담하는 고정 수수료 때문에 소액 결제가 부담이고, 고객에게 부담하자니 카드사 간의 경쟁이 피터지고

밴 업체는 자기네 기기 쓰는 자영업자 유치 하려고 경쟁적으로 서비스를 하니 부담이고

 

그럼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전략을 해야 하는데 서로 이익 싸움 하느라 뜯어먹기 바쁜거다. 카드 수수료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이 서로 뜯어먹는 구조를 타파하는게 아닌 이상 언젠가는 또 다른 이유로 뜯길거고 그땐 정부 탓도 하기 힘들다. 자영업자 머리수는 많은데 결집이 안 되니까 힘이 약한거고 다루기 쉬우니 휘둘리는거라 결국은 자영업자가 힘을 모아 해결책을 제시하는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공공배달앱 역시 이권의 문제인데 배달의 민족이 딜리버리 히어로에 매각되면 독과점의 위험이 있었기에 공정위가 요기요를 매각하라고 지시를 했었다. 만약 독과점 체제가 만들어져 버리면 자영업자에게 유리해지겠는가? 그렇지 않다. 이벤트나 쿠폰 등 경쟁성이 없는 공공배달앱 자체는 뻘짓일지 몰라도 독과점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보다는 낫다. 그런데 왜 굳이 다른 배달앱이 아닌 배달의 민족을 꼭 거론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배달의 민족이야 말로 독과점 위험성을 불러 일으킨 쪽이고 배민 때문에 우린 살았다 라는 식으로 흘러갈만한 이야기가 되지 못 한다.

 

자영업자는 공급이고 카드 서비스, 배달앱은 자영업자의 수요이며 소비자의 수요이기도 하다. 숫자는 많은데 서로 경쟁하느라 뭉치지 못 하니 힘이 약할 수 밖에 없다. 반면 TV에 한번 나와서 눈길을 끌게 되면 그 음식점은 대체제가 없기에 자연스레  수요가 몰리게 되고 공급이 따라가질 못 하게 되는거고. 근데 그게 쉽지는 않지. 그러니 방송사에 돈 줘 가면서 한번이라도 나오려는거고.

 

 자영업자 입장에서 자영업자의 시선으로 보이고 다른 사람은 간과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영업자 입장에서 답답함이 느껴지기에 말할 수 밖에 없는것도 있겠고.

 

그런데 논리적 구조가 취약하다. 김영란법은 국민 대다수가 반긴 법이다. 유달리 자영업이나 농어민 쪽에서 김영란법 때문에 소비가 줄었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심지어 입법시킨 국회의원 조차도 김영란법 투정을 부리기 까지 한다. 그런데 정작 소비자 입장에선 전혀 공감되지 않는거다. 공감대 영역이 단절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발언은 지극히 방향이 정반대를 향하고 있다. 국민에게 호소하는게 아니라 김영란법이 없어졌으면 하는 측에게 호소를 하기에 먹히지 않는다.


또한 최저임금에도 기쁘고 감사하는 서민들 이란 뉘앙스 자체가 상당히 구시대적이다. 과거에는 그런 풍조가 있긴 했다. 일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하는 그런 풍조. 근데 그거는 이미 오래전에 노예 근성이라며 지금 세대에는 받아 들여지지 않는 풍조다. 동등한 위치,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구조를 원하는 세대에겐 감사라는 표현은 지극히 딴 세계의 표현이다. 돈 받을때는 당연히 고맙다고 한다. 그럼 미쳤다고 이것밖에 안 주냐 사장아 라고 할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적으로 인사치레 정도이고 실질적으로는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며 돈 주는 사람 입장에선 느끼지 못 하는 감정이다. 인간지사 항상 감탄고토하기 마련이니 감사하다는 말만 기분좋게 듣고 힘들다는 소리는 한귀로 흘렸을거 아닌가. 이는 공감대 영역이 다르다는걸 의미한다. 그러니 쉽게 전달되기 힘들다.



사족이지. 그리고 포장이고.


나도 문재인 정부의 실책은 화가 나고 짜증나지만 이건 좀 아니다. 감정적인 사람을 건드릴때는 그 감성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가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다른 부분에서 심기를 건드려 버리면 아무것도 받아 들여지지 않기 마련이다. 

 

다수의 목소리에 맞설 용기라고 포장하는건 좀 그렇다. 물론 실제 다수가 깽판을 치기는 한다. 근데 그 깽판치는 사람 외의 사람에게도 반감이 들게끔 이야기 하면 교집합이 되며 그렇게 만들어진 실제 다수에게는 용기는 용기로 느껴지지 않게 된다.


차라리 자영업자의 용기나 문재인 정부에 외치는 용기라고 하던가.  이준석이 저번에 좋은 말을 했던데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말하는 사람도 선한 사람이고 애국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소수고 너희는 다수다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프레이밍하는 것은 좋지 않다. 깔끔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