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9일 금요일

최근 산 게임 초반 감상






일렉스

그래픽이 좀 애매하고 아트풍이랄까 분위기가 잘 안 맞는 느낌.

일단 말이 더럽게 많다. 선택지가 많은것을 강조하기 위해 온갖 대화내용이 있는데, 그래봐야 지금 하는 퀘스트에 대해 위치나 인물 정보 같은거 파고드는게 대부분.

온통 대화만 하던터라 주인공은 대화 내내 잠시도 가만 안 있고 건들건들하는것도 정신사납고, 전투도 그렇게 재밌진 않았다. 공격에 스테미너를 소모하는터라 여러번 공격하고 뒤로 빠지고 해야 하는데 일반 공격 말고는 할게 없으니 심심하다.

더군다나 뭐 푼돈이랑 경험치 벌 퀘스트를 찾으려고 처음 간 마을을 뒤지고 돌아다니는데 대화가 가능한 NPC는 한정되어 있는데 찾기가 너무 어렵다.

그나마 다른 게임이랑 좀 차이라면 제트팩 덕분에 고저차는 덜 탄다는 점? 자유도가 높대서 사긴 했는데 아직 그렇게 자유도는 만끽 못 하는 중. 딱 하나 느낀거라면 원래 구덩이라고 과학기술을 이용한 물건들을 쳐 박아 두고 버리는 곳에는 접근을 못 하게 막는데 내가 그런줄도 모르고 그냥 제트팩으로 다른 곳에서 떨어져서 도우미 로봇을 찾고 이야기 한 다음 나오니 너 여기 들어가면 안 돼 이러는거 보고 그래도 나름 자유도는 있네 싶었던 점.

NPC들도 싸가지없이 구는 녀석은 적어서 기분은 아직 안 나빠졌는데 또 모르긴 하지. 근데 뭐랄까 NPC캐릭터들이 딱 보기에는 매력은 없는데 대화를 하다 보면 약간씩 빠져드는 느낌은 있다. 세일이라 9천원대에 사서 어차피 적당히 즐길거라 이 정도면 그냥 무난한 정도. 스테이터스랑 스킬은 폴아웃느낌이 드는데, 사실 난 폴아웃 치트만 써서 플레이 했던터라, 이 게임 잘 할 수 있을런지 불안. 대충 보니까 20렙까지는 빌빌댄다던데.. 스킬을 NPC에게 배워야 하고, 돈도 많이 드는거 같고, 스텟 제약도 심하고 좀 빡센 느낌.





이전에 나름 괜찮게 했던 언에픽의 개발자가 만든 다른 게임인 고스트1.0

전작과 확연하게 다른 소재를 들고 나왔는데 생각보다 잘 만들었다. 언에픽도 잘 만들긴 했지만 고스트1.0은 언에픽보다 좀 더 세심하게 만든 느낌.

일단 로봇과 해킹이란 SF요소를 도입하면서 찾아보기 힘든 빙의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본래 저 조작하는 하얀로봇에서 홀로그램 같은걸로 튀어나와서 다른 로봇에 들러붙어 조작이 가능하다. 그걸 이용해서 푸는 퍼즐들이 있고, 전투가 어렵다 싶으면 이 빙의해킹 요소로 강한 로봇에 들러붙어 다른 로봇들을 잡는 방법도 가능하다.

더군다나 3D프린트라는 기술을 생각외로 잘 써먹었는데, 우주정거장에 홀로 침투한 로봇이 파괴되었을때 3D프린트로 복제하여 부활시킨다는 개념, 그리고 그 부활개념 때문에 로그라이크처럼 모아두었던 자원을 잃게 되는 요소를 잘 접목시켜놨다. 업그레이드 및 아이템 사용등도 세계관에 맞게 SF요소에 맞게 잘 버무려놨다.

하지만 소소하게 마음에 안 드는 점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스킬초기화를 간편하게 가능하게끔 지원 안 한다는 점이고. 둘째로는 나카무라에서 만든 로봇 이름이 나카라던지 로봇끼리 곤니찌와 인사를 한다던지 의미없는 일뽕요소가 들어가 있고, 진중하게 초반을 휘어잡던 스토리를 프롤로그 끝나자마자 깨버려서 좀 깬다. 사실 이 정도로 잘 만든 세계관과 소스를 가졌으면 더 진지하게 가도 괜찮았을텐데 언에픽 마냥 패러디나 개그 요소로 웃기려는 것을 강조한다. 웃기긴 하다. 다만 아쉽다는 거지. 스토리가 진지했더라면 더 몰입되었을텐데 그렇지 않다보니 왜 나카무라사의 우주정거장을 해킹하려는지 하는 행위에 대해 진정성과 깊이가 안 느껴진다.






핸드 오브 페이트2

TRPG+액션RPG라는 독특한 조합이 궁금해서 사 본 게임

기본적으로 진행은 저 게임마스터처럼 보이는 사람이 카드를 늘어놓으며 카드를 발판삼아 이동하며 진행한다. 걸린 칸의 카드를 뒤집어 정해진 이벤트를 수행하는데 이에 대해 여러가지 선택지가 있지만 대체로는 한다 안 한다 정도의 선택지라 자유도나 다양성이 없는 느낌이다. 오히려 스마트폰 게임 중에 선택지 소설 타입의 medival fantasy나 wizard choice라는 게임이 있는데 이쪽이 더 TRPG스럽다. 근데 그건 한글화가 안 되어 있어서..

그래서 다양성이 빠진 이벤트에서 TRPG스러움은 결국 다이스갓에 맡기거나 야바위처럼 실패랑 성공 카드 섞어서 뒤집어서 맞추는 식으로 진행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는데 이게 참 뭐같은게 대체로 성공실패 카드 뒤집기는 2:2식으로 나뉘어서 50%확률인데다, 다이스갓에게 맡기는 짓거리는 더 심한게 주사위 3개 던져서 12가 넘어야 한다던가 식이다. 주사위 3개 최대값이 18인데 그 절반 이상을 내야 하다보니 대체로 이 경우는 성공을 하는 일이 없다.

더군다나 더 거지같은 점은 그렇게 이벤트를 성공시켜서 장비 같은 것을 획득한다 쳐도 정작 보상 선택시 현재 장비가 어떤건지를 확인 할 수 없다보니 현재 장비를 기억 안 해두고 진행하면 뭘 선택했어야 했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전투는 대체로 이벤트에서 전투로 넘어가면서 좁은 맵에 적 4마리가 나오는걸 다 잡으면 이기는 식이고, 적 종류마다 대체법이 좀 다른 정도. 예컨데 북부인같은 바이킹애들은 한번 방패가드를 해도 콤보를 해서 한번 더 바로 가드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위력적으로 공격이 들어오고, 부패한 사람이라고 좀비같은 애들은 그냥 팬다고 되는게 아니라 지쳐서 쓰러졌을때 절명기 같은걸 집어 넣는등 소소한 차이가 있다. 맵도 이벤트마다 다 달라서 같은 맵으로 땜빵하는 그런 점은 적다.

액션성 자체는 괜찮다. 일단 스테미너 개념없이 그냥 패면 되는터라 편하고, 방패 가드 타이밍을 대놓고 미리 초록색 이펙트를 띄우며 알려주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쓰면 한대도 안 맞고 잡는게 가능하다. 물론 공격마다 가드 불가능 공격도 있어서 그런 경우는 회피를 해야 하는데 회피 동작도 깔끔하게 사용 가능해서 액션성 자체는 괜찮다. 또한 초반에 얻는 사기꾼 마법사 동료는 가까이 가서 동료 스킬 호출을 하면 1회 방어막을 걸어주는데 이게 횟수 제한같은건 없는터라 정 쫄리면 방어막받고 개돌같은걸 해도 된다.

그 외에 현재 들어가 있는 지역마다 걸려 있는 월드룰? 같은 요소도 있어서 북부인들 지역 가면 북부인들이 반겨주지 않을거라면서 북부인들 등장확률 업 같은 점이나 왕국의 보물을찾아 달라는 메인 미션이나, 명성을 모아 검을 얻자는 메인미션등이 걸려 있거나, 도둑소굴은 도둑들이 주 적이 될거라는 등의 예고를 알려주기도 한다.

생명,식량,골드의 자원요소를 관리해야 하는데 일단 식량은 첫번째로 잘 관리 해야 하고 두번째가 체력, 다음이 돈, 물론 체력이 0이 되면 실패니 체력을 제일 잘 관리해야 하긴 하나 일단 초반의 2장 클리어까지 한번도 전투실패는 없었고 오히려 식량이 0이 되서 체력이 깎여나가는게 문제였다. 상점칸을 못 찾았으면 식량보급을 못 해서 큰일났겠지.


아주 좋지도 않고 아주 나쁘지도 않은 느낌. 게임 자체는 신경써서 잘 만들었다. TPRG스러운 전개를 좀 더 잘 짜 줬더라면 좋았을텐데.











어쌔신 크리드 오딧세이

개인적으로는 참 잘 샀다고 생각 될 정도로 만족.

일단 그래픽부터가 쩐다. 게임소개 페이지의 스샷은 너무 느낌이 안 났는데 실제로 플레이하면 그런 부족한 느낌은 안 든다. 다만 좀 아쉬운거라면 갑옷에 리깅이 좀 딱 붙게 리깅을 해 놔서 어깨를 움직였을때 저 철판이 마치 비닐풍선 붙여 놓은거 마냥 어깨따라 찌그러지는건 아쉽다.

그리고 생각도 못 한 부분에서 감동받은 것이 올려 놓은 스샷 중 텐트의 사각형 구멍 난 부분인데, 사실 메탈기어 솔리드가 저런 샛길을 만들어 놓길 잘 했었다. 그런데 피스워커부터 메탈기어솔리드는 저런 샛길을 만드는 일을 하지 않아 잠입게임의 루트를 이전작보다 되려 축소를 시켜 놨었는데 이걸 어쌔신 크리드가 세상에 저 그리스시대 느낌으로 구현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동스럽다. 오히려 잠입게임으로서 어쌔신 크리드가 더 성의를 다 하는 느낌이다.

게임 자체는 액션성이 전작들보다 더 뛰어나졌는데 내 경우 어크 신디케이트를 진짜 더럽게 재미없게 한터라 이 게임을 할까? 말까? 할까? 말까? 더럽게 고민했었다. 신디케이트가 추리파트 빼고 전부 진짜 개노잼이어서 그때처럼 실망하면 정말 슬플거 같았는데 게임이 잠입암살보다 RPG에 가까워서 공격 받아치기나 스킬 사용 등 전작들보다 더 공격방식이 다양해진 것은 너무나도 마음에 들 뿐 아니라 환상적이다.

특히 영화 300에 나온 스파르타킥 스킬의 경우 높은 곳에서 적을 유인하다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적을 스파르타 킥으로 날렸는데 저 멀리 날아가면서 쓰리쿠션으로 콰당탕 하면서 쳐 박히는걸 보면 아우 진짜 와 쾌감이 장난이 아니다. 이 스킬 자체는 사실 적을 죽일만큼 딜량이 안 나오는 스킬인데 이게 낙하데미지 때문에 위치에 따라 한방기가 되다 보니 이 맛에 아드레날린이 차기만 하면 바로 유인해다가 발로 까는 것만 하고 있다. 너무 즐겁다.


게다가 액션성이 참 진짜 탐험과 잘 맞게 해 놨는데 아직 낙하데미지 0까지 개방은 안 했지만 낙하시 데미지로 죽을 위험이 없다는 점에서 절벽을 오르고 떨어지는거에 부담이 없어서 편하고, 스테미너 같은걸로 공격을 제한하지 않아 시원시원하고, 체력도 일단 전투에서 이탈하기만 하면 빠른 속도로 차올라서 피통 간당간당하게 유지하는 것 때문에 전투를 시도도 못 하는 일이 없다보니 얼마든지 적이 보이기만 하면 개길수 있는게 편하고, 말은 언제든지 편하게 부를 수 있고, 덕분에 싸돌아 다니는데 부담이 없고 말은 언제든지 부를 수 있으니 말 타고 다니기 보다는 내가 직접 걸어다니면서 저기엔 뭐가 있고 여기엔 뭐가 있고를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이 강하다.

이게 왜냐하면 나는 야숨이 거지같았던 점 중에서 절벽타고 올라갈때 비오면 미끄러져 스테미너 떨어지면 떨어지지 바람,벼락 다 신경써야 하는 주제에 정작 그놈의 절벽들은 스테미너 3줄 채워서 올라가기도 버겁게 높게 만들어 놓으니 절벽 타는거 자체가 마음에 안 들고, 필드 사냥도 마찬가지. 전투 밸런싱이 개같이 되어 있어서 적 피통은 많지, 내 피통은 거지지. 라이넬 앞에서 방어구는 무쓸모지, 결국 맥스시리즈나 퍼먹어야지. 무기 내구도는 떨어지면 부서지지, 그렇다고 무기가 좋은게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좋은 무기 주는 애들만 골라서 파밍해야 하지 말 타고 다니려면 안장을 획득해야 하는데 그 안장 획득이 피곤하지 이것저것 제약만 걸려 있다보니 싸돌아 다니는 즐거움을 느낄래야 느낄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딧세이는 그런 쓰잘데기 없는 걱정들 하나도 할 필요 없이 마음 편하게 싸돌아다니면 되고, 심지어 잠수마저도 가능한데 이 잠수 시간도 넉넉해서 위쳐3는 이 잠수시간을 늘리려면 범고래 포션을 빨아야 한다거나 하는데 오디세이는 그런거도 필요없이 마음껏 잠수하며 수영하는게 가능하다. 위쳐3 참 좋은데 그놈의 잠수는 아쉬운데 오디세이는 그런 걱정도 할 필요 없다는 듯이 배려를 하는게 너무 좋다.

다만 이렇게 다 좋은데, 참 좋은데 아쉬운 점은 자유도를 빙자한 멀티선택지 시스템이 사실상 별 쓸모가 없다는 점. 위의 핸드오브 페이트나 일렉스 마냥 사실상 한다 안한다 정도 뿐이고, 좀 더 편하게 가거나 어렵게 가거나 하는 변화도 없고, 심지어 퀘스트 자체를 아예 강제로 배정을 해 버려서 안 하겠다고 하는 것도 안 된다.

물론 메인퀘스트를 안 하겠다고 뛰쳐나가면 뒷감당이 힘들기야 하겠지만 변화구를 줄 수 있는건 아닐까? 마치 위쳐3에서 주요 인물들을 죽이고 넘어가거나 안 죽이고 넘어가거나 아예 안 만나거나 등등 다양한 갈래가 있는 것 처럼. 헌데 이 오디세이 멀티 선택지 시스템은 그런 갈래길이 거의 없다. 있어도 별 의미가 없고. 위쳐3는 정말이지 내 선택이 불러 올 결과가 흥미진진했는데 이건 그런 맛이 없는게 좀 아쉽지.


네가지 게임 다 아직 초반이긴 해도 이번에 게임 산건 대체로 만족이다. 이번 게임 선택처럼 매번 게임이 잘 맞으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그렇지 않다보니...

2019년 11월 20일 수요일

리스토란테 파인애플 피자,오뚜기 올미트 피자

리스토란테 파인애플 피자 -

파인애플 피자 혐오 밈이 인터넷상에선 많이 떠돌지만 실상 맛 자체는 무난하다. 달콤한 파인애플의 맛과 향이 괜찮고, 궁합이 잘 맞는 느낌.

다만 파인애플이라서 그런지 좀 물기가 있어서 도우가 질척하게 뭉그러지는데 그건 좀 아쉬운 편.

아주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은 그런 정도.


오뚜기 올미트 피자 -

원체 오뚜기 피자는 저가 피자로서 싸구려 느낌이 강해 차라리 리스토란테 피자를 먹고 말지 했었는데, 새로 나온 올미트 피자는 고기만 있으니까 그래 한번 먹어나 보자 해서 샀다.

 일단 통통한 소세지와 햄, 살라미 등이 많아서 입 자체는 즐겁다. 피자 토핑의 올리브나 파프리카 등 야채나 다른 것들보다 고기를 좋아하면  취향에 맞을 피자.


워낙 고기로 맛을 채우다 보니 소스는 어떤지 크게 와닿지는 않았는데 치즈는 나름 괜찮았다. 개인적으로 또 사 먹고 싶은 정도.

다만 이게 지금 내가 구입한 마트에서 세일이라고 5천원에 팔아서 사긴 했는데 이게 요즘 오뚜기 피자 라인업은 5천원대랑 6천원대가 있어서 이게 6천원대로 넘어가면 좀 애매할듯. 사실 오뚜기 6천원 피자는 그다지라는 느낌이 강한데, 얘는 괜찮다. 6천원대로 넘어가도 어쩌다가 한번 사 먹어 볼 만한. 그런데 소비자로서 입장은 그냥 5천원에 머물러 줬으면 하는 느낌.

2019년 11월 12일 화요일

키즈모노가타리 철혈편 - 20분짜리를 60분으로 늘린 게 용하네


키즈모노가타리 3부작의 첫번째인 철혈편

대부분은 그냥 소리 지르고 하악거리고 잡담이나 하다가 끝이 난다.


평가가 왜 이러냐면 실제로도 이렇다. 초장부터 건물 위에서 불타며 떨어지다가 이야기 앞부분으로 넘어가서 바람에 날려 팬티가 보이는 씬을 길게 보다가 지하철에서 흡혈귀를 만나 존나게 소리 지르더니 흡혈귀도 살려달라고 존나게 소리 지르더니 갑자기 뭔 바람이 불었는지 흡혈귀 살리겠다고 죽으러 가는 주인공 이후에 건물 내부로 장면은 전환되고 왜 불타며 떨어지는지를 또 다시 보여주고, 이러쿵 저러쿵 왜 능력 빼앗겼고 이래 되어먹었는지 설명하다가 흡혈귀 헌터랑 싸움도 아닌 소리만 지르더니 구해준 사람이랑 같이 다음에 어떻게 할지 이야기만 하다가 끝.이 전부다.


딱 20분으로도 가능 한 것을 어떻게 이걸 60분으로 늘린건지 참 이해도 안 가지만, 이걸 3부작이랍시고 한거 보면 얘네들 진짜 일본애들 극장판 만드는 재주가 없는건지 아니면 이렇게 해도 팔리니까 배짱장사하는건지 모르겠네.


무비N월정액에 저번달 아니면 아마 저저번달까지는 열혈편까지는 있던 걸로 아는데, 이게 이번달엔 안 보여서 철혈편 밖에 못 봤는데 좀 아쉽다. 그러게 진작 시간 있을 때 볼 것이지. 뭐 봤다 하더라도 마지막 냉혈편은 돈주고 봐야 하긴 하겠지만. 2천원 세이브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

근데 철혈편만 봐도 다음 편을 볼 생각이 안 든다. 첫 시작을 잘 끊어야 다음편이 궁금해지고 그렇게 흥미가 생겨 구매 의욕이 생길텐데, 이건 딱 1부로 끝낼 것을 3부로 조각낸거라 허접한 상술이 도가 지나치게 튀는터라 구매욕이 안 드는 상황이다.

뭐 언젠가 무비N월정액에 다시 들어갈수도 있고, 어쩌면 아닐수도 있고. 구태여 따로 보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기회가 된다면 그땐 미적미적거리며 미루지 말고 봐야 겠지. 3편인 냉혈편은 그나마 낫다고 하니까 그것만 그냥 따로 사서 볼까.

패트와 매트 뚝딱뚝딱 대소동 - 광기, 더 많은 광기, 해냈어


언제 한번 조커 관련 밈 게시물을 보다가 진정한 광기라는 제목으로 이 영화가 이야기 나온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마침 무비N월정액에 있기도 하겠다 해서 봤다.



절반도 못 보고 중도하차를 해 버릴 정도로 정말 미친 광기의 연속이었는데 이게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나랑 코드가 안 맞아서 그렇다.

스탑모션 애니메이션으로서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진짜 같은 물건 퀄리티는 대단했는데 이 영화의 재미라고 하는 것이 양화를 위한 악화의 구축이 대부분이라서 나랑 안 맞는다. 정확하게 뭔 이야기냐고 설명하자면 이 영화 첫꼭지에 등장한 세면대 위치 옮기자고 집안을 개판 만들어 놓는게 내 상식으로서 이해가 안 간다는 점이다. 간단히 풀 수 있는 일을 일부러 크게 만드는 과정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건데 이게 나랑 코드가 안 맞는다.


물론 극한직업에서 잠복수사 하겠다고 치킨집 인수해서 대박 터트려서 프랜차이즈까지 가는 식으로 이 경우도 일이 커지고 커지는게 웃기긴 한데 패트와 매트가 내 취향이 아닌 이유는 그 과정이 크게 터트리기 위한 합당한 개연성이 없기 때문이다. 극한직업은 결국 치킨집을 차렸으니 마약범을 잡았지만 패트와 매트가 저지르는 일은 결과를 위한 개연성이 없다.


그래서 사실 다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 할 생각은 없고, 진짜 상상도 못 할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괴상한 애니메이션이라는 것 밖에 할 말이 없다.


개인적으로 슬랩스틱 코미디도 개연성 없으면 별로인지라 슬랩스틱이든 과장이든 별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다면 괜찮을지도.

고양이 사무라이 - 미적지근한 개그에 고양이를 끼얹나?


TV 사극 드라마로 있는 고양이 사무라이의 영화 버전.

인상 험악한 사무라이 마다라메 큐타로가 사는 지역에선 개파와 고양이파의 조직이 서로 싸우고 있었고, 마침 부임한 관리가 고양이파라 혼약까지 성사 될 시점에 돈이 궁한 사무라이 마다라메 큐타로에게 고양이파가 기르는 애묘 타마노죠를 암살 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 온다.

돈이 궁해 마지못해 수락하긴 했지만 차마 고양이를 벨 수 없었던 마다라메는 타마노죠를 집에 데려오게 되고, 타마노죠가 사라진 고양이파에서는 소동이 일어나게 되어 사건은 예상치 못 한 흐름으로 흘러가게 된다.



라고 적었지만 사실 그렇게 흥미있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본래 TV드라마 사극이었던 것을 영화화 했는데 TV사극은 과묵하고 인상 험악한 사무라이가 취직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가난에 찌들어 가진 실력과 생긴것과는 다르게 찌질하게 사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코미디에 가깝다.


그러나 이 영화판 스토리는 애매하게 주제를 넣고 화합이란 테마 아래에 우당탕 스토리를 넣으려 했으나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웃기는 포인트가 대충 3부분 정도 밖에 없었는데 1시간 40분짜리에서 3번밖에 못 웃기면 그저 그런거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도 그렇게 웃기는 포인트가 많지는 않았던지라 확실히 일본의 극장판 제작 능력은 너무 수준이 떨어진다.

TV사극을 본 사람을 위해 어느 정도 비슷한 구성을 취하기는 했는데 TV판을 못 본 한국 사람들이라면 별 의미없는 구성이다.

그나마 타마노죠를 납치 해 온 시점부터 고양이 보는 즐거움은 있는터라 영화의 즐거움이 개그->모에로 바뀌고, 중간 중간 개가 등장하기에 동물 보는 재미라도 없었으면 참 재미없었을 듯 싶다.


그렇다고 해서 제값 주고 볼 정도로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서, 나처럼 무비N월정액이라 무료로 보는거 아니면 비추천이다.

참고로 Tv 사극판은 짧은 20분에 개그를 자주 넣기에 굳이 본다면야 이쪽이 더 재미있다. 이것도 무비N월정액 무료로 시청 가능하고.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 소녀와 소년은 서로를 구원하였지만 동시에 구원받지 못 했다



말 하기를 좋아하는 활발한 소녀 ‘준’. 어느 날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슬픔에 빠진 소녀 앞에 나타난 ‘달걀요정’은 두 번 다시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준’의 입을 봉인해 버린다. 말을 잃은 소녀 ‘준’은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고, 뜻하지 않게 학교에서 진행하는 지역 교류회의 준비위원으로 임명되면서 비슷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세 명의 친구들과 알게 된다.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외톨이 ‘준’은 자신을 이해해 주는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가슴 속에 가둬두었던 자신의 진심과 마주하게 되는데… 과연, ‘준’은 외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소개를 그냥 가져 왔다. 줄거리는 뭐 따로 스포일러 하게 되긴 할테니 앞에서 이야기 할 필요는 없을테고,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만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못 만든 것도 아니고,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그것을 연결하는 부분이 이상한 머리와 몸통은 멋지지만 팔다리가 이상한 그런 느낌의 애니메이션이다.

이야기의 뼈대 자체는 참 괜찮고 좋다. 스윙걸즈, 스쿨 오브 락, 시스터 액트 2, 꽃피는 봄이 오면이나 영화는 아니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나 울려라 유포니엄처럼 음악과 관련된 도전을 통해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드라마 이야기는 심금을 울리기 좋고 쉽게 와닿는 소재다. 이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역시 소녀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뮤지컬 도전을 통한 과정에서 풀어나가는데 이 기본적인 구조만 보면 참 좋다. 그러나 이건 뮤지컬 애니는 아니라서 뮤지컬을 기대하고 보면 안 된다. 이건 미리 말해 둔다. 뮤지컬 애니가 아니다.

이 애니는 뮤지컬 애니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을 연결하는 곁가지가 너무나도 이상하기 때문이다. 기승전결을 예로 들면 기승전까지는 뮤지컬로 이어가는데 결에서 그냥 확 하고 빠져 버린다. 또한 이야기 곳곳에서의 표현도 이상한데 성처럼 생긴 러브호텔을 러브호텔이라 인지도 못 한 소녀에게 나타난 달걀이 호객꾼이니 시멘트에 담가져 바다에 버려질거라느니 뭔 야쿠자 할 법한 이야기나 하는데 이게 실제로 존재하는 무엇이던지 아니면 소녀의 정신적인 문제라 하던지간에 이야기를 이상하게 만든다. 러브호텔인지도 몰랐던 소녀에게 야쿠자나 할 법한 이야기를 하는 달걀은 너무 부조화스럽고, 심지어 소녀가 다니는 집,학교와 그리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닌 성처럼 생긴 러브호텔에서 바람 피던 아빠는 아빠가 성에서 나오는 것을 봤어 라고 엄마에게 이야기 한 것을 가지고 딸에게 너때문에 이렇게 되었구나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질 않나, 엄마는 엄마대로 딸이 말을 못 하게 된 것을 가지고 딸을 원망하는 투로 이야기 하며, 달걀은 의미가 있는 것 처럼 나오지만 실상 별 의미는 없고, 라스트를 이어주는 그 러브호텔은 체호프의 총이라도 되는 것 처럼 나오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잘 끌어낼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차라리 체호프의 총처럼 쓸 거면 달걀을 쏘던가. 그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중요한 스포가 되니 나중에 따로 언급한다.


그런 부분적인 것만 따로 떼 놓고 본다면 참 좋다. 근데 그게 아니니까 문제지.



이하 스포일러.


나루세 준. 어릴때는 수다스러운 성격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아버지가 바로 동네에서 바람 피는 것을 목격하고 엄마에게 말한 뒤로 아버지와 엄마는 이혼하고, 엄마와 같이 살게 되며 달걀왕자를 만나 입이 봉인된 소녀. 정말로 봉인된 것은 아니고, 말을 하면 심리적인 스트레스로 복통을 앓기에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 소녀에게 타쿠미,다사키,나츠키와 함께 마을 교류회 실행위원이 강제로 배정되고, 이에 같은 목적으로 거부하러 간 사카가미 타쿠미가 비어 있는 교사의 방인 음악실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이를 나루세 준이 바라보며 소녀와 소년의 접점이 생기게 된다.

반 담임이자 음악교사는 뮤지컬을 마을 교류회의 주제로 정하려 하며, 노래를 통해서 마음을 전한다는 이야기에 나루세 준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타쿠미 역시 부정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뮤지컬에 대한 이야기를 문자로 주고 받으며 나루세 준은 그런 자신의 고민과 이야기를 알아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타쿠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타쿠미 역시 나루세가 하고 싶어하는 뮤지컬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응을 보낸다.

그러나 부상 이후로 불만이 가득한 야구부원 다사키 다이키는 나루세를 거론하며 말도 못 하는 쓸모 없는 애는 빼고 이야기 하라며 비난을 하고, 타쿠미는 그런 다사키를 향해 야구부원이 하는 불평을 들은 걸 이야기 하며 서로를 상처 입힌다. 싸움이 되려 하는 찰나 나루세 준은 겨우 힘을 짜내 노래를 부르며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마을회비를 걷으러 온 주민에게 대신 회비를 내던 중 엄마를 만나고, 엄마는 말을 하지 못 하는 딸에게 함부로 문 열고 만나지 말라며 딸의 상태를 비난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이에 나루세 준은 집을 뛰쳐나가 타쿠미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우연찮게 편의점 앞에서 만난 나루세는 타쿠미의 집에 초대를 받고 나루세 준이 자신이 전하고 싶은 말,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주는 것을 타쿠미는 진지하게 받아주며 고민도 하며 조력자들을 모아준다.

마을교류회는 뮤지컬을 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일의 준비는 순조롭게 흘러간다.

하지만 정작 실행일 전날 나루세는 타쿠미와 나츠키가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고, 타쿠미가 자신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감정이 무너지게 된다. 자신만의 왕자님인줄 알았던  타쿠미는 그저 응원의 감정 밖에 없었고, 결국 노래로 풀고 싶었던 마음은 다다르지 못 할 감정이 되자 의미가 없게 되어 뮤지컬 당일 참가를 거부 해 버리고 만다.

주연이 사라진 채로 뮤지컬을 진행 할 수 없었던 학급은 나루세 준을 찾지만 찾을 수 없었고, 이야기를 하던 도중 타쿠미와 나츠키의 이야기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비난의 화살은 사랑 싸움이냐며 나루세에게 돌아가고, 어찌되었든 나루세가 빠진 상태로 뮤지컬을 진행 할 수 밖에 없었고, 타쿠미는 나루세 준을 찾으러 간다.

온갖 곳을 돌아다녀도 찾을 수 없었던 타쿠미는 처음 나루세 준과 이야기 중 나왔던 러브 호텔을 떠올리고 러브 호텔에서 절망에 빠진 나루세 준을 찾아 데리고 가려 하지만 나루세 준은 뮤지컬 따위 아무래도 상관 없게 되었고 모든 것을 거부한다.

말은 상처를 준다고 생각하여 말을 하지 않으려 하는 나루세에게 타쿠미는 상처를 줘도 좋으니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고, 모든 것을 쏟아낸 나루세에게 타쿠미는 동질감을 느끼며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모두들 덕분에 변할 수 있었던 나루세는 마지막으로 타쿠미에게 고백을 하지만 친구로서 남게 되고, 뮤지컬 하이라이트에서 돌아온 나루세의 노래와 함께 뮤지컬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

뮤지컬이 끝난 후 다사키는 나루세에게, 타쿠미는 나츠키에게 고백을 하려 하는 걸로 이야기는 끝난다.



중간에 몇가지 부분을 뺐는데 타쿠미의 부모는 나루세처럼 이혼을 하여 아버지랑 같이 살지만 그 아버지도 따로 살아 조부모랑 같이 산다는 부분, 타쿠미와 나츠키는 중학교 시절부터 사귀는 사이었지만 원체 어릴때는 다 그렇지만 누가 누구랑 사귀더라 라는 거에 민감한터라 나츠키는 그런 이야기에 아니라고 발뺌을 했고, 정작 그 중요한 시기. 이혼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타쿠미를 위로해주지도 못 한 채 여자친구가 아니라고 했던 것에 나츠키는 후회를 한다는 점. 타사키가 나츠키에게 먼저 사귀자고 했지만 나츠키는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둥 애매하게 얼버무렸다던지, 이런 저런 부분이 있는데 이게 중심 스토리랑 뭐 중요하진 않은데 거슬려서 일단 설명에서는 뻈다.

이 애니메이션의 이야기가 묘하게 흘러가는 것은 캐릭터를 제대로 다잡지 못 했기 때문이다.

나루세를 가장 잘 이해 한 것은 타쿠미였고, 타쿠미의 문제에 가장 접근 한 것도 나루세였다. 나루세가 곤란 해 할 때 도와준 것이 타쿠미였고, 타쿠미가 가진 문제를 해결 하게 만들어 준 것도 나루세였다.

하지만 나루세는 타쿠미를 바라고, 타쿠미는 나츠키를 바라고, 다사키는 나츠키를 바라고, 나츠키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즉 삼각관계 처럼 흘러가는 상황에서 결말을 참 이상하게 내어 버렸는데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나루세와 타쿠미는 서로에게 긍정적인 관계였고, 되려 타쿠미와 나츠키는 긍정은 커녕 일방적으로 단절된 관계였다. 나츠키도 못 해 본 메신저 ID교환이나 집에 찾아가는 일이라던가도 나루세가 먼저였고, 아버지를 통해 배운 음악이나 취미에 대해서도 가장 먼저 알아간 것도 나루세였다.

과정이 이렇다 보니 과거의 관계야 둘째치고 나루세와 타쿠미는 거의 확정적으로 연인 관계에 들어서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수가 없다.

그런데 이게 뮤지컬 전날 타쿠미와 나츠키간의 미적지근한 대화를 통해 타쿠미는 아무 생각 없는 놈이라는게 드러났고, 심지어 여기서부터 캐릭터마저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지금까지 나루세에게 들어오는 공격을 다 막아 주던 탱커가 결국 자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 해 버린 나루세를 가지고 얘 때문에 이 사단이 나긴 했지만 어떻게든 수습하자 이따구로 나온다. 뭐지? 내부의 적인가? 지금까지 나루세를 가장 잘 이해하던 놈이 얘가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다 얘 잘못인데 이러고 있으니까 보는 입장에선 정말 이해가 안 가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아무리 망해버린 러브호텔이라 하더라도 결국 이 둘이 만나는 곳이 러브호텔이었는데.... 고딩이 러브 호텔. 아니 뭐 사심 가지고 만난 것도 아니고 결국 뮤지컬 때려치려던 애 찾으러 간 거니까 구린 의도로 간건 아니지만 이것도 결과적으로는 나츠키도 못 해 본 만남...인데 대체 왜 얘네 둘이 이어지지 않는지를 이해 할 수가 없단 말이지. 그럴거면 차라리 처음에 나왔던 달걀 걸어 놓는 신사에서 만나던가. 세상에 어린 고딩 여자 남자 둘이 러브 호텔에서 고백을 하고 차이고... 과정을 왜 이리 만들어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애당초 별다른 목적도 없이 다사키가 나츠키에게 고백을 한 것도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영화 내내 보여지는 접점이라고는 나루세 - 타쿠미와, 다사키 - 나츠키인데 결말은 나루세 - 다사키, 타쿠미 - 나츠키이니 말이다.

 나루세와 엄마와의 관계도 애매하다. 결국 뮤지컬을 통해서 나루세가 말하려던 것은 엄마에게 전해지긴 했는데 그냥 울었을 뿐 이후로 어떻게 되었더라가 없다. 이것을 확연히 풀지 않고 그냥 넘어갔는데 그러다 보니 이 모든게 나루세의 문제에서 출발한 이야기지만 결국 끝맺음은 나루세의 행복과 상관없는 삼각관계 줏어먹기로 변질된다.


특히 이 부분이 심화되는 것은 바로 나루세가 원했고 나루세로 인해 촉발되고 나루세가 만든 극본으로 나루세가 주연이었어야 할 뮤지컬에서 나루세가 빠져 하이라이트 부분에서야 겨우 들어오는 것이 문제다.


나루세의 문제를 뮤지컬로 풀고 싶었으면 그것을 뮤지컬로 풀었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걸 러브호텔에서 풀어 버리니 나루세의 문제가 희석이 되어 버렸다. 본래 이것이 뮤지컬을 통한 감정 해소로 접근 했으면 그렇게 풀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 하다 보니 앞서 거론한 스쿨오브락이나 시스터액트2처럼 확 하고 다가오고 푸는 카타르시스가 없다.


나루세가 가지고 있던 문제는 결과론적으로는 풀리긴 했는데 과정이 마라톤 달리다 말고 제자리 멀리 뛰기로 변질 된 그런 느낌이다. 뮤지컬 애니를 만들고 싶었지만 능력이 딸려서 샛길로 샌 그런점도 느껴진다.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점도 넘쳐나고 왜 이렇게 소재를 썼는지도 이해가 안 가고, 여러모로 좀 그런 부분이 많긴 한데 앞서 말했듯이 잘 만든건 아니지만 못 만든것도 아니라서 볼만은 하다. 특히 본작의 메인인 나루세 준의 연기는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얘 혼자서만 노래가 안정적이라서 뮤지컬로 나갔어도 괜찮았을텐데 왜 그러지 못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루세와 타쿠미, 다사키는 모두 나루세를 돕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나츠키만큼은 좀 겉도는 느낌으로 전혀 풀리지 않았다는 점은 좀 애매하다. 그녀는 타쿠미를 돕고 싶어했지만 외부의 시선에 신경을 써서 관계를 단절 시킨 것을 여전히 극복을 못 하는데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신경은 쓰이지만 왜 그런지 크게 몰랐다.


그런데 리뷰 이미지를 찾던 중 해당 포스터에 아노하나 제작진이라는 부분을 보고, 아 그래서.. 라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아노하나. 즉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의 애니메이션에서 비슷한 구도가 나온다.


진땅과 유키아츠는 멘마에게 여전히 매달리고 있고, 이를 아나루와 츠루코가 바라보는 형태다. 삼각관계로서 그나마 유키아츠는 마음을 정리하지만 진땅은 여전히 멘마만을 생각하기에 아나루와 이어질 수가 없고, 멘마와 진땅 역시 멘마는 이미 죽은 사람이니 이어 질 수가 없이 그저 관계만 정체 될 뿐이다.


그나마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의 나루세와 타쿠미는 그렇게까지 꼬인 관계도 아니고 정리도 안 되어 질척거리는 상황도 아니지만 카타르시스를 줄 만큼 재미있고 애정이 들어갈 만한 관계도 아니라는 것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이질적으로 애매하게 가능성만 내보이고 적극적으로 해피엔딩으로 이어주지 않았던 작품들과는 달리 소년과 소녀의 마음을 확인하고 서로 이어주니 이 카타르시스가 폭발하여 마음에 와 닿을수 있었는데, 문제는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아노하나처럼 과정을 하나 하나 밟아가며 빌드업해 마지막에 터트릴 뮤지컬을 와장창 뭉개버렸고, 그렇다고 애정관계가 카타르시스를 주냐면 그것도 아니니 어중간하게 변화구만 날리는 그런 애니가 되어 버렸다.


아노하나의 제작진이라는 타이틀. 그것이 주박이 되어 결국 자신들에게 바라는 고객층의 니즈에 맞춘 스토리를 만든건자는 모르겠지만 결국 이상하다. 괜찮게 볼만 했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뮤지컬로 시작하는 이야기지만 뮤지컬은 메인이 아니고, 문제 해결이나 애정 관계나 하나같이 카타르시스는 없고, 사용된 소재가 너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이상하고, 제대로 풀리지도 않지만 그냥 저냥 볼만하다 정도가 결국은 결론이다. 했던 말 또 하는거긴 하지만 참 이상하다보니 명쾌하게 정리하기가 힘든 애니다.

2019년 11월 7일 목요일

조커 - 넌 아마 이해 못 할 거야


어제부터 조커 VOD가 올라 왔는데 어제는 내가 일진이 안 좋아서 영 감상 할 컨디션이 아니다 보니, 오늘에서야 봤다.


놀라우면서도 평범하고, 공감과 비공감대의 영역을 오고가는 정말이지 난해한 영화가 아닐수가 없다.

그리고 조커에 신나 밈으로 활용한 게시물들에 노출되어 부분적으로 스포일러를 당하면서 감흥을 느끼지 못 한 부분도 있었던터라 많이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이 영화는 부디 스포일러 없이 그리고 배트맨도 조커도 염두해 두지 않고, 오로지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에만 집중해야만 수월하게 감상이 될 것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스포 없는 부분만 이야기 하자면 영화 자체는 매우 대단하다.  배경음도 녹아들고, 배우의 연기하며 분위기 모두 압도한다.

처음 30분 정도는 아서 플렉에게 깊은 공감으로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문제가 아닌 타인에 의해 고통받는데 이는 형태는 다르지만 누구나 겪을법한 혹은 겪었을 법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아서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과 비추어 보게 만든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있으니, 보고 싶지 않다면 패스하기를.








그러나 그가 좋아하던 머레이쇼를 보며 망상에 젖게 되는데 이후에도 종종 망상과 현실이 교차되며 무엇이 허상이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기 힘들게 되며 아서 플렉이 겪고 있는 고통과 현실에 접근하기 힘들게 된다. 초반에 그를 바라보며 다가갔던 공감대는 어느새 거리를 두게 되고, 그의 망상이 벽이 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지만 진실을 확신 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든다.

그런 상황과는 상관없이 아서의 상황은 꼬여 가기만 하고 급기야 노망난 어머니로부터 토마스 웨인과의 관계를 알게 되는데, 이는 정말로 지독하리만치 치명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현실이 괴로운 사람 특히 아서처럼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갑자기 툭하니 아버지가 대기업 부호였다 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가정환경이 불행 할 수록 내가 더 나은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하는 생각을 갖기 마련인데 이는 안 그래도 망상증이 있는 아서에게 있어 토마스 웨인은 아버지의 존재를 그리워 하며 거지같은 삶 속에서 그를 구원 해 줄 빛으로 여겨 졌을 것이다.

허나 그러한 아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실은 어머니가 아서처럼 혹은 아서가 어머니처럼 아서의 어머니는 망상에 미친 사람이라는 반응 뿐이었고, 어머니를 믿고 있던 아서에게 있어서 그런 반응은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아무도 그를 존중하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고 무시하는 세상 속에서 광대 분장을 했을 때 자신을 공격한 화이트칼라 직종의 3인방을 총으로 쏴 죽인 것이 세상의 공감을 사고, 아서가 분장한 광대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아서의 심정이 변화하게 된다.

아버지처럼 동경하던 머레이는 그의 코미디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만들고, 아버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토마스 웨인은 어머니를 미친사람이라 하며 자신을 공격하고, 사장은 자신을 무시하고 그를 린치에 몰아넣고 해고를 시키고, 직장동료는 그를 배신하고 나몰라라 하고, 그가 꿈꾸는 코미디언으로서의 길은 가망이 없고, 연인이라 생각했던 같은 아파트의 여자와의 관계는 그저 망상에 불과했고, 사람들은 광대인 자신을 향해 존중을 하지 않고, 그에게는 원치 않는 상황에 웃음이 발작하는 병이 그를 괴롭히고 방해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병원에서 어머니의 기록을 찾아 보던 중 그는 그가 입양된 아이이고, 어머니에게 학대 당해 억지로 웃음이 나오는 병을 앓게 되었고, 그 어머니가 망상증에 걸린 미친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를 둘러 싼 모든 관계들이 마치 그를 거부하듯이 끊어지고 벽이 세워지는 듯한 그 와중에 자기 자신은 끝없이 추락하는 듯한 상황속에서 아서는 지하철에서 자신을 괴롭힌 3인방을 죽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얽매이고 옥죄는 모든 것을 털기 위해


어머니를 질식사 시키고, 자신에게 총을 준 사실을 회피하고, 지하철 사건과 관련하여 경찰의 물음에 입을 맞추려고 회피하는 동료 랜들을 찔러 죽이고, 머레이쇼에 출연하여 그가 지하철에서 3명을 죽인 범인임을 공개하고, 방송에서 자신을 조롱했던 머레이를 총으로 쏴 죽인다.


그 과정속에서 그가 심정적으로 모든 짐을 내려 놓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계단의 춤사위는 그에게 공감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모든 것이 해제된 그의 심정에 다가가게 만들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생각 할 것들을 만드는 영화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아서의 망상일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맞물려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느낀 몇가지를 이야기 하자면 일단 첫째로 아서가 스탠딩 코미디에서 말한 부분이 너무나도 와닿는다.

아서는 학교 가기 싫다는 말에 어머니가 공부 열심히 해야 나중에 먹고 산다고 하고 이에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말로 응수 한 것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부자들은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부분부터 소리는 끊기며 아서의 망상으로 넘어가는데 나는 이 부분이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으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영화의 초반에 공감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그것은 아서를 둘러 싼 거지같은 환경과 존중받지 못 하는 상황이 현대에서는 서비스직에서 주로 발생하는 일이고, 아서가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말이 마치 서비스직을 할건데요 라는 말처럼 받아 들여졌기 때문이다.

서비스직의 직업병 중 하나는 원치 않는 상황임에도 감정을 억누르며 웃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이는 웃고 싶지 않은데도 억지로 웃어야 하는 직업. 아서의 직업인 광대와 웃고 싶지 않은데 웃게 되어 버리는 아서의 정신적 질환이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서비스직이 경쟁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선택하기 쉽다는 점에서 이는 블랙 조크보다도 더 신랄하게 다가온다. 스탠딩 코미디에서는 코미디언이 될거에요 라고 했지만 이는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라 결과론적으로 될 수 밖에 없었던 점에서 자아비판이라고 보여질 정도이다.


또한 아서를 괴롭혔던 회사원 3명의 죽음을 광대라고 하는 무서운 이미지에 당한 희생양처럼 내보내는 언론은 마치 착한 사람이 당한 것 처럼 이야기 하지만 영화를 통해 보여진 그들의 행동은 결코 착하지 않았다. 아서가 말한 "내가 죽었다면 내 시체를 밟고 갔겠지 난 거들떠도 안 보면서 토마스 웨인이 추모하니 놈들 죽음은 슬프다?" 라는 것처럼 아서가 당했더라면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회적 약자인 아서의 코미디 영상을 틀고 조롱했던 것 처럼 사회적 약자를 짓밟고 조롱하는데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사람 모두가 악독하지 않다며 외면하려 한다. 머레이는 경찰 두명이 사경을 헤맨다고 했으나, 정작 경찰이 지하철 같이 좁은 곳에서 먼저 총을 발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따돌림을 당해야 할 대상을 만들고 사회적으로 안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테두리 밖에서 그들을 공격하는데 여념이 없다. 심지어 토마스 웨인은 그 세명이 죽은 이유에 부유한 사람들을 시기하여 공격하는 겁쟁이들의 소행으로 치부하는데 이는 정작 죽은 그들의 행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 부유한 자들이 두려워 하는 이유에 불과하다. 진실과 상관없이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유를 만드는 것은 마치 아서의 망상증과도 유사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그렇게 아서를 태우고 가는 경찰차 바깥으로 보여지는 폭동에 의해 안전의 주체가 바뀌어버린 고담시를 보며 아서는 즐거워한다.

물론 그 회사원 3명이 죽을만큼 나쁜 짓을 한것이 아니다 라고 할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서를 두려워 하지 않았기에 거리낌 없이 아서를 괴롭힌 것도 사실이다. 죽을만큼 나쁜 짓인지 아닌지 그것은 아서에겐 주관적인 것이었다. 그가 말했던 코미디의 주관성처럼 그 세사람이 죽을만큼 나쁜 놈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철저하게 아서의 개인 문제다. 그리고 그것이 죽을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입장이다. 그리고 이 둘을 나누는 것은 그것이 나의 일인가 나의 일이 아닌가 그것 뿐이다.


또한 아서는 극중에서 보여지는 모습만 보면 철저하게 선하게 행동하려 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게리를 놀릴때나 지하철에서 3명이 여자를 둘러 싸고 괴롭힐때도 적극적으로 막지는 못 했어도 그에게는 죄책감이 있었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노트에 적어 놓은 "정신질환의 가장 나쁜 점은 사람들 앞에서 아닌 척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럼 그는 최소한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게 정중했다. 하지만 그가 더이상 착해지기를 포기 했을 때 머레이쇼에서 말한 "아닌 척 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처럼 그는 그 누구보다 위험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역으로 봤을 때 착한 아서를 기준으로 봤을땐 그를 둘러싸 린치를 가한 증권가 3인방은 아서의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람이었고, 아서가 들고 있는 광고판을 부수고 아서를 공격한 불량 소년들은 아서의 생계를 공격했고, 아서의 영상을 틀어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머레이는 아서의 존엄성을 짓밟았고, 아서에게 학대를 가한 어머니는 아서의 미래를 망가뜨려 놨다. 결국 아서는 "내 죽음이 내 삶보다 가치 있기를"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몰리고 있었다. 조커가 되어버린 아서가 조커를 공격했던 사람들에게 위험한 사람이 된 것 처럼 아서를 공격했던 사람들 역시 아서에겐 위험한 사람들이었다. 단지 죽지 않을 정도로 간당간당하게 살아 있고, 자살을 생각하지만 거 봐 결국 안 했잖아 라고 하면 그만인걸까? 아서를 망가뜨린 책임을 나누면 기쁨이 배가 되기라도 하는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 역시 범죄자들이다. 단지 아서가 그들을 죽였기 때문에 모든 죄가 아서에게 돌아간 것 처럼 보일 뿐 아서를 망가뜨린 그들은 결국 그에 따른 결과를 맞이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머리속이 계산으로만 돌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걔넨 아서를 안 죽였는데 아서도 죽이면 안 되지 라고 말이다. 그러나 아서가 죽었다면 아서는 복수가 가능 했을까? 복수라는 것 자체가 가능 했을까? 랜든을 죽이고 난 뒤 아서는 게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게리. 가도 돼. 나한테 잘 해 준건 너 뿐이었어" 게리는 아서의 복수의 대상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게리는 아서를 망가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지타산적으로 손해를 보고 싶지 않았다면 죽지 않을 만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괴롭히지 않아 게리처럼 복수를 당할 가능성을 0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아서의 증상이 악화되기 시작하는 것은 아서를 향한 긍정적인 관심이 없어지면서 였다. 정신상담의는 아서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 사회적 지원이 끊겨 약까지 끊기고, 입양된 아서가 학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알지 못 했고, 그가 불량 소년들에게 당한 일을 사장이 관심 없어 하고, 그에게 총을 준 것을 랜든이 모른체 하고, 어머니는 아서가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말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토마스 웨인에게만 집중하고 아서에겐 무관심하며, 토마스 웨인은 주관적인 해석으로 광대라는 롤에 감추어진 아서를 겁쟁이로 일축하며, 경찰 또한 아서를 조롱했고, 동경의 대상이던 머레이는 정작 그를 조커라고 불렀던 것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반면 아서가 죽인 3명에 대한 것이 언론을 통해 점점 부풀려지며 시위대가 생길 정도로 아서의 부정적인 행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자 아서는 이에 대해 반응을 하게 되고 이는 아서를 안 좋은 쪽으로 바꿔놓게 만든다.


내가 너무 아서를 두둔하는 것 같지만 조커는 그저 결과일 뿐이다.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결과. 아서가 너무 특별해서가 아니다. 아서는 되려 너무나도 평범하다. 그와 같이 심각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더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모른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기 때문에 설령 조커같은 사람이 더 등장하더라도 사람들은 조커 영화에서 보여진 것 처럼 악당이라 여겨지는 대상에게 그들만의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 낸다. 조커가 만들어진 과정. 최초의 살인을 하게 만든 3명의 행동에 대해서는 무시하듯 조커가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서는 깊게 파고 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시위를 주도하고 폭동을 일으킨 자들 역시 관심이 없다. 부유한 자들이 아서의 행동을 부유한 자에 대한 겁쟁이 같은 행동이라 하듯, 폭도들은 부유한 자들을 대상으로 공격을 시작한다. 결국 고담에서 아서는 사라지고 조커만이 남았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틀렸을 수가 있다. 영화가 다분히 해석을 모호하게 하게끔 아서의 망상과 정신병원씬을 통해서 정확하게 이야기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모호함이 다른 의견을 만들고, 그렇게 생각을 하게끔. 아서같은 사람이 조커가 되지 않을 수 있게끔 사람들이 생각 할 거리를 던진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특별하다.


이 영화는 조커라는 캐릭터와 배트맨이라고 하는 장르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까지 보여진 조커라고 하는 캐릭터와도 배트맨이라고 하는 영화가 내세운 의미와도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름에도 불구하고 매우 적나라하게 조커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킬링 조크에서 조커는 누구나 타락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다크 나이트에서는 조커가 보여주고 싶었던 인간은 악하다는 점을 선박 폭파에서 실패했으나, 정작 조커 영화에서는 고담 시민 모두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기주의로 똘똘 뭉쳤음을 보이고 있기에 기존의 배트맨 시리즈와는 전혀 다르기에 괴리감만 느껴진다. 다크 나이트에서 보여주었던 시민들의 선한 모습은 대체 조커 영화에서는 어디에 갔는가? 그래서 배트맨 시리즈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배트맨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테러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항상 선하게 행동하려 한다는 것이겠지만, 이 영화는 조커라고 하는 캐릭터의 탄생을 보여주기 위해 모두가 악한 조커만큼이나 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이 영화가 말도 안 된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고담 시민들의 악이 너무나도 가깝기 때문이다. 다크나이트에서 보여주었던 선보다도 더 와닿는 거리감이 짧은 악이기에 아서에게 공감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볼 때 기존의 배트맨 시리즈를 생각하면 안 된다. 연결이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조커의 롤을 염두해도 안 된다. 이는 사람이 타락해 가는 과정에서 결과가 조커라는 이미지를 쓰고 있을 뿐, 기존의 배트맨 영화에서 보여지는 조커의 밑도 끝도 없는 광기와는 절대적으로 대치된다. 기존의 조커들의 광기에서는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커의 행위는 절대적으로 테러로서 다가오며, 공포스러운 반면 이 조커 영화에서 보여지는 아서 플렉은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이유없는 공격이 아니기에 이를 공포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아서의 행위를 이해 하느냐 이해 못 하느냐로 나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커의 행위를 이해 할 수도 없었고, 이해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서의 행위를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최소한 그 행위가 왜 어떤 과정을 통해서 발생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영화 자체가 무용스러운 것이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조커와는 완전히 이질적이게 된다. 물론 이 또한 엔딩씬에서의 연출로 인해 그리고 아서의 망상증으로 인해 확신 할 수 없다. 특히 아서의 망상증을 이렇게 밀도있게 표현한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기에 너무나도 조커스럽다. 모든 배트맨 시리즈에서 밥먹듯이 거짓말을 한 조커는 그 거짓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의문을 표할 필요가 없었다. 킬링 조크에서 보여지는 조커의 과거나 다크 나이트에서 말한 조커와 아내와의 관계나 하나 같이 그것이 사실이어도 상관 없고 거짓이어도 상관 없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아서 플렉의 망상증은 아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녹아들어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항상 의심하게 만든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그러한 혼돈, 혼란스러움, 정말이지 조커 그 자체의 심연을 들여다 보게 만든 가장 조커 다운 조커였다.



하지만 그 망상증에 의해서 이 영화는 이해를 하기 힘들게 만들고, 그러한 이해의 거리감과 더불어 아서라고 하는 캐릭터가 받는 시달리는 고통과 환경 역시 이를 이해 할 수 있는 사람과 이해 못 하는 사람으로 나뉘며 점점 이해의 영역이 달라지게 된다. 심지어 미국의 총기 소지와 폭동은 한국인으로서는 이해 하기 힘든 점도 있을 것이다. 더더욱이 월드컵 때 자동차 위에서 난동을 피운 정도 외에는 딱히 폭동다운 폭동도 없었던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폭동현상을 이해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여러 이유 때문에 이 영화가 그만큼 논란이 되고 있고 많은 말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어느 정도 공통점이 보인다. 누구는 조커가 되기 전의 아서 플렉을 보고, 누구는 아서 플렉을 한참 지나친 조커를 본다. 누구는 미친 사람이 날뛰는 영화라고 하고, 누구는 사회가 만든 괴물이라고 본다. 결국 서로 보고 싶은 영역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 참으로 교묘한 영화다. 망상증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나뉘지도 않았을텐데.

하지만 개인적으로서 이 영화를 그저 미치광이가 날뛰는 불쾌한 영화라고 생각하거나 코스플레이나 하며 유희적 소모거리로 취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이해 못 할 거라고 본다.

너는 조커가 되기 전의 아서 플렉을 경험 한 적이 없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