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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6일 월요일

조커 : 폴리 아 되 감상

상당히 늦게 보게 되었는데 뭐 여러 이유가 있던터라 그랬다. 케이블tv가 종종 수신 불량으로 나오질 않아서 케이블tv로 뭘 보는걸 하고 싶지 않았었는데


알고 보니 최초의 케이블 선 연결 공사 때 케이블 분배기의 케이블 선을 되게 원시적으로 붙여 놓았던터라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떨어질랑 말랑 했던 것.


이 상태가 몇년 넘게 지속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나는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를 진짜 모르겠는데, 오히려 이런 접촉 불량 상태에서 게임을 하고 동영상도 업로드 하고 인터넷 자체를 쓰는게 매우 불편하긴 해도 지속이 되었던건 불행 중 최고의 불행 아니었을까? 진작에 알았다면 그 긴 시간 불편과 스트레스를 안 받았을텐데.


아무튼 이 문제를 고치고 난 뒤 6월에 dlive에서 tv포인트를 많이 넣어줘서 뭘 좀 볼까 했는데 이게 떠올라서 대여 구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게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나쁜 평가를 받을 영화인가? 하는 의문 밖에 안 든다. 그냥 평범하게 뻔한 영화 였을 뿐인데 왜 그렇게 다들 열내고 분노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영화는 좀 많이 뻔하다. 결말이 쉽게 예상이 되는 구조에 전작에서 아서를 괴롭히고 변화시키던 요인이 적어 크게 몰입 되는 구조는 아니다. 그렇다 해서 나쁜 영화냐면 그렇지는 않다. 단지 이건 히어로 무비나 팝콘 무비는 아니고 전작에서 아서 플렉이란 사람이 가진 문제와 그가 겪은 고난과 고통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려 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아서의 내부에 들어가 그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려 한 듯 하다.


이야기는 전작에 이어 아서 플렉이 다섯명을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오르고 검사 하비 덴트가 전기의자형 사형을 구형을 한다. 대부분의 러닝 타임은 좀 지루한 법정 내용 위주와 종종 등장하는 뮤지컬 파트로 이루어지며 공통적으로는 아서를 괴롭히는 주변의 요소와 아서를 긍정하는 듯한 요소들이 아서를 흔들어 놓는다.


전작에서 아서에게 긍정적인 요소는 오로지 아서의 망상병에 의한 망상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번에는 아서를 조커로서 추앙하는 존재들에게 긍정 당하는게 대부분이다. 전작과 달리 아서는 망상병 요소가 그리 자주 등장하진 않는다.


아서의 형량을 감형 시키기 위해 아서에게 조커라는 또 다른 인격이 있다는 것을 아서의 변호사가 주장을 하고, 이에 맞서는 검사 하비 덴트 두 사람에 의해 아서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 알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 들어나고 아서는 정신적으로 많이 몰리게 된다.


이야기가 좀 지루 할 수 밖에 없는데 전작에선 금융가 직원 3명을 죽이며 아서가 변모하게 된 순간과 아서의 행위에 다른 사람들이 호응 하는 것으로 아서가 들뜨고 변화를 즐긴다면 이번 작에서는 할리 퀸을 암시하는 리 퀸젤이 아서에게 접근하면서 아서가 아닌 조커를 자극하고, 조커를 광신하는 무리들의 언급은 자주 들어나지만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거의 보여주질 않고, 아서는 아서 본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람들이 원하는 조커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기에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에 교도소 위주의 공간에서 조용히 지내야 하는터라 전작 만큼 여러 공간과 상황 및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들이 없다. 그것도 그거지만 아서의 충격적인 과거의 진실이나 토마스 웨인과의 관계 등 과 같은 장면도 없으니 더더욱 심심하게 다가온다.



------스포일러------



그렇게 아서는 주변의 스트레스 요인들과 자신을 긍정하는, 정확히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아서의 심리를 자극하는 리 퀸젤과 조커 옹호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조커의 분장을 하고 악당 코미디언처럼 행동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증인으로 나온 전작의 소인증을 앓던 인물인 개리 퍼들스가 나타나고 조커로서 개리 퍼들스를 조롱하고 몰아 붙이며 개리 또한 조커 취급하는 사람들과 같다며 몰아 붙이는 아서에게 개리 퍼들스가 자신은 아서에 의해 불면증과 공포로 고통받고 있으며,  너만 유일하게 날 비하하지 않았고 너만 나에게 잘 대해줬는데 라며 전작에서 아서가 개리를 보내주며 너만 유일하게 나한테 잘 대해줬어 라고 말한 영화의 그 시점과 같은 지점. 완벽히 같은건 아니지만 1:30분 시점에서 약 3~5분 지난 지점인 1:35분 지점에서 그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마치 아서가 개리를 보내주듯 개리는 그 부분에 이어서 아서의 인간성에 호소하는 응답을 하는 느낌을 준다.


이후 아서는 다음 법정에서 조커로서의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은 아서 플렉이며 조커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커를 추앙하던 자들에 의해 법원의 외벽이 폭발하고 그 혼란을 틈타 아서는 법정을 빠져 나온다. 이후 조커를 추앙하는 자들에 의해 차로 빠져 나가나 그들의 오갈데 없는 파괴 본능이 조커인 자신을 등에 업는 것 만으로 폭발하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차에서 빠져 나온다. 이후 계단에서 리 퀸젤을 보고 그녀에게 다가가 둘만의 세계를 원하지만 조커가 아닌 아서에겐 리 퀸젤은 관심이 없었고 그녀는 아서를 두고 떠난다.


이후 다시 감옥에 갇힌 아서가 면회장으로 이동 하던 중 다른 수감자에 의해 칼에 찔리며 싸늘하게 죽어가며 뒤쪽으로는 dc코믹스의 조커를 암시하듯 자기 입을 찢는 살인자의 모습이 비추어진다.



전작인 조커의 내용은 아서의 망상병과 겹쳐 아서를 긍정 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는가가 나뉘는 모호한 지점에 있는 아서가 조커가 되어가는 이야기인 반면,  조커 : 폴리 아 되는 반대로 조커로 취급 받는 아서가 인간 아서 플렉과 조커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인간으로서의 아서 플렉을 되찾는 이야기로서 전작의 모호함이 걷히고 인간으로서 그가 받는 모든 고통과 슬픔에 집중되어 있다.


나는 전작의 토마스 웨인과 아서 플렉의 관계에서 정말 가난한 사람의 심리를 찌르는 구성이었다고 말했는데, 자신의 출생 과정이 모호한 사람일수록 자신은 사실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고 제대로 된 부모의 사랑을 받을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나 바램을 느끼기 마련인 점을 절묘하게 사용한 것 처럼


폴리 아 되에서는 사랑받지 못 하는 낙오자 남성 계층. 남성혐오자들이 주로 언급하는 인셀로서의 아서 플렉을 자극하는 그를 사랑하는 척 이용하는 여성이 등장함으로써 사랑받고 싶었던 아서의 소망을 자극한다.


전작이 행복한 가정을 '원하는' 아서의 소망을 건드렸다면, 이번 작은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은' 아서의 소망을 자극한다. 전작에서 아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착한 아이의 모습을 유지 한 반면, 폴리 아 되에서는 리 퀸젤이 자신의 아내가 될거란 기대에 가장으로서 리 퀸젤이 원하던 조커의 모습을 유지한다. 다만 전작에선 확실하게 아서가 정신병을 앓고 있음에도 평범한 척을 유지하는게 힘들다는 것을 여러번 암시하며 아서가 노력해 왔다는 것을 보여주나, 폴리 아 되에서 아서가 가정을 위해 조커로서 행동하는 부분이 짧고 이를 알려주는 장면이 적어 그리 공감이 가긴 힘들다.


다만 이를 은유하는 부분은 좀 많이 있긴 한데, 전작보다 확연히 늘어난 흡연씬을 통해 아서가 마치 잦은 흡연을 하는 아버지와 같은 느낌을 준다. 미국의 아버지상과 얼마나 가까운지는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이미지는 담배를 자주 피고, 과묵한 성격에, 회사라는 조직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수동적인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느껴졌다. 



구성 자체는 전작과 비슷하긴 하지만 전작과 크게 다른 점은 전작에선 아서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정말 거의 나오질 않았던 반면 이번작에서는 아서의 변호사나 판사나 개리 등 여러 사람들이 아서를 위해 배려하는 것이 나온다. 그리고 그런 배려가 있었기에 아서는 조커를 포기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구성인데 이는 아서 플렉이 힘든 사람일 뿐 미쳤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준다. 전작이 아서의 망상병으로 미친놈이구나 라는 선입견을 갖게 만들었다면, 이번 작은 망상병 연출이 줄고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하는데, 사회보다 더 잘 나오는 교도소의 정신병 약 덕분인가. 역시 약이 있었어야 했는데 싶기도 하다.


그리고 전작의 브루스 웨인이나 머레이처럼 상류층을 꼬집는 요소가 하비 덴트와 리 퀸젤의 가정 문제로 나오는데, 아서 플렉이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던 결정적 요인이 국가의 무관심으로 인해 버려지다 시피 입양되어 그가 고통 받았던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실인데, 이 사실을 하비 덴트는 무시하고 오로지 아서 플렉을 사형 시키는데만 주력한다.  또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방화를 저지르고 가게의 물건을 파손하고 절도를 저지름에도 불구하고 멀쩡히 돌아다니는게 가능한 리 퀸젤의 부유한 재산과 영향력을 통해 상류층이 얼마나 병들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정의로운 검사였지만 조커에 의해 타락한 투페이스의 하비 덴트는 정의로운 검사이긴 해도 그게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악당과 싸우는 모습으로 정의롭구나 라는 느낌이었다면 폴리 아 되의 하비 덴트는 오로지 자신의 정의관에 매몰되어 그저 악당이라 불리는 사람과 싸우기만 할 뿐인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투페이스가 되고 난 이후 자신의 가치관에 매몰되는 것을 생각하면 폴리 아 되의 하비 덴트의 성격은 억지스럽지는 않은터라 큰 악을 상대 할 때와 평범한 악을 상대 할 때 같은 가치관, 같은 행동이지만 다르게 받아들여 질 수 있는 점을 보여준다.


만약 내가 아서 플렉이었다면? 하는 가정을 세웠을 때 아서의 행동은 대단히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어 좋은 점도 있다. 조커로서의 아서를 기대한 사람들이야 싫겠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아서처럼 같은 상황에 놓였더라면? 하는 물음에 아서의 행동은 내가 했을 선택과 매우 근접했기에 더더욱 동질감을 느꼈던 점도 있다. 사실 전작의 아서는 랜들을 죽이고 머레이 쇼로 가는 과정에서 조커 분장을 하였지만, 그는 정말로 조커가 되려 했던게 아니라 머레이가 언급한 조커라는 단어와 사람들이 원하는 캐릭터성을 받아들여 자신이 죽음으로서 모든 걸 끝내려고 했었으니까. 쇼 중간 노트에서 보여진 '내 죽음이 내 삶보다 가취있기를' 이 문장에서 그의 결심이 다시 한번 보여진다. 아서는 머레이 쇼에서 증권가 3인방을 죽였다는 사실을 폭로하는데 이는 폴리 아 되의 법정에서 어머니를 죽인걸 실토하는 것과 같은 구성이다. 단지 이 둘의 차이점은


머레이는 무례했고 판사는 무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머레이는 무례했고 지속적으로 아서를 자극했기에 그는 택하던 자살 대신 머레이를 죽였지만, 그가 어머니를 죽인걸 고백하고 죄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누구도 아서를 조롱하지 않았기에 머레이 쇼에서 자살을 하려 했던 것 처럼 자신의 죄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장면은 아서가 전작에서 조커였는가? 조커가 아니었는가? 라는 해석의 문제에 쐐기를 박는 장면이다. 아서는 끝까지 아서였다. 단지 모호함의 극치인 전작으로는 해석이 갈리는 상황에서 폴리 아 되를 봐야만 알 수 있었기에 전작에서 조커에 대한 망상을 부풀리던 사람들에겐 배신감을 느끼게 된 거겠지만. 어떻게 보면 폴리 아 되: 공유정신병적 장애라는 말이 딱 맞다. 조커를 바라는 사람들이 똑같은 망상을 공유하는 반면 아서는 망상을 극복하고 자기 자신을 되찾았다. 하지만 조커를 원했던 자에게 죽임을 당했고, 이 영화 역시 조커를 원했던 자들에게 지나친 혹평을 받아 죽었으니까.


물론 이렇게 말하면 아서가 랜들을 죽인건 어떻게 설명할건데? 라는 의문이 들거고 실제로도 폴리 아 되 법정씬에서도 개리가 죽을 정도의 죄는 아니었어 라고 말한다. 랜들은 아서를 크게 괴롭히진 않았지만 권총을 떠넘긴 죄만 있는 정도였고. 그래서 랜들을 죽일 정도는 아니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런데 이 역시 폴리 아 되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아서는 개리에게 자신이 머레이쇼에 나온걸 봤냐고 묻지만 취조실에 있느라 못 봤다고 하자 아서는 내가 그 쇼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걸 못 보다니 라고 한다.


아서가 머레이쇼에서 무엇을 말했는가? 증권가 3인방을 죽인걸 말하며 무례해서 죽였다고 이야기한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무례했던, 개그는 주관적인거야 니들은 뭐가 재밌는지 없는지 니들 맘대로 기준을 내리잖아 라는 말에 담긴 것처럼 아서가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니들 좋자고 상대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지 마라 상대를 존중해라 라는 점이다. 이걸 개리가 봤다면 자기가 왜 랜들을 죽였는지가 전해졌을텐데 전해지지 못 했으니 안타까울 수 밖에 없고 전해지지 않았으니 그 순간 개리가 자신을 조커라고 부르는 자들과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기에 개리를 몰아붙이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 부분에서 아서는 자신의 뜻이 전해졌다면 = 즉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고 상대를 존중해야 하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면 자기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아서의 조커는 혼돈 속에서 태어난게 아니라 법칙에 의해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기존의 dc 코믹스의 조커와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생각은 리 퀸젤의 등장으로 흔들리게 되는데, 이전까지 아서는 조커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법칙 하에 나타난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조커를 열렬히 따르는 리 퀸젤은 부유하고 가정문제도 없고 피해자도 아니었으며, 거짓말도 서슴치 않고 방화도 저지르지만 처벌을 받지 않는 그녀는 무례한 가해자 측에 있었고, 반대로 무례한 자들로부터 피해를 받던 개리는 조커와 관련된 피해자일뿐이란걸 깨닫게 된다. 또한 이는 스크린 밖의 관객을 향한 메세지 같기도 한데, 소외된 계층에게 관심을 갖는데 아니라 조커에만 열광하는 사람들은 마치 리 퀸젤과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서는 오로지 자기만 재밌고 즐겁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던 자인 증권가 3인방, 어머니, 랜들, 그리고 머레이를 죽였다. 랜들은 그들 중에서 누굴 괴롭혔냐 하면 바로 개리를 괴롭히던 인물이다. 아서의 네가 유일하게 나한테 잘 대해줬어 라는 말에 담긴 것은 개리 너를 괴롭히는 놈을 내가 없애줄게 라는 것과 같았는데 정작 개리는 법정에서 그 일 후로 직장에 나갈 수 없게 되었고 불면증과 공포로 고통받았기에 아서는 자신의 행동이 개리를 더욱 괴롭게 했고, 그들이 바라는 조커의 모습으로는 결코 원하는 걸 이룰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자신은 무례한 자들에게 복수로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것은 전달되지 않았고 세상은 단순히 미친놈으로 보거나 변호사는 이중인격으로 취급하니까 말이다. 최소한 변호사만이라도 복수가 원인이었다 라고 한다면 형량을 감형 받을수는 없어도 아서가 왜 그랬는지는 전달이 되었을텐데, 단순히 이중인격이라 그랬다고 몰아가니 아서 입장에선 안타까운 일이고, 변호사를 해임 한 뒤 개리에게 그 쇼를 안 봤냐고 물으며 그 일을 다시 상기하게 만들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아서 플렉이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되찾은 것 만으로도 내용은 좋다고 느꼈지만 결말은 좀 시시하긴 했다. 예상한 그대로의 결말인터라 그랬던 것도 있으나, 감독이 이 조커 영화를 그냥 끝내버리고 싶었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안 그러면 이런 뻔한 결말을 낼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아서 플렉을 위한 결말로는 좋은 결말이었다. 조커와는 분리되어 아서 플렉으로서 살다 죽어갔기에 그나마 명예와 존엄성을 지킬수 있었으니까. 억울한거 못 참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조커가 아닌데 조커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죽느니 그냥 죽길 바랄거다. 


영화 초반부에 아서를 엄청 따르는 젊은 놈이 보여지는 것으로 아 바톤 터치구만 하는 생각을 받고 아서는 조커가 되지 않겠네 라고 예상했는데 딱 그렇게 흘러갔다. 만약 아서가 고독한 싸움을 이어 나가고 아무에게도 긍정받지 못 한다면 진짜 조커가 되는거 아닌가 생각했을테지만 아서를 긍정하는 요소들과 아서를 흔들기만 할 뿐 조커가 되게 하지는 못 하는 요소들이 그 심증을 확실하게 굳혀 놓았다. 아서가 조커가 되기 위해서는 전작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사회의 무관심과 폭력성, 배려가 없는 상황이 나와야 말이 될텐데 그러면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이상해지고 고담시의 리얼리티가 훼손되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이고, 그런게 없이 단순히 미쳐서 조커가 된다면 그 또한 말도 안 되고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 될테니까.


다만 이 영화가 마무리되어야 할 필요성은 공감하기에 시시하긴 해도 이런 결말을 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인정한다. 대체 왜 영화 하나에 다들 미쳐 날뛰는지 참... 조커1도 그렇고 폴리 아 되도 그렇고 그냥 영화일 뿐이잖아.


그렇게 혹평 받을 영화는 아니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소외받는 존재가 겪는 고통과 비정상적인 반응들을 담아 아서 플렉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치중한다면 좋은 내용이다. 단지 dc 코믹스로서 조커 이야기는 아닐 뿐이지. 하지만 이게 dc 코믹스의 조커 이야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나쁜 영화인가? 하면 그건 아니잖아. 오히려 이 정도로 비틀고 풍자하는 영화가 dc 코믹스의 영화에서 나올수 있는 영화인가? 라는 물음에 답을 할 수 있겠냐고. 오히려 dc 코믹스 팬이라면 이 영화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마블 히어로 무비는 멀티버스와 페이즈 등 점차 복잡하고 전작을 봐야만 하는 내용들로 진입 장벽을 세우고 있지만 정작 그 결과물이 그저 그런 히어로물 내용으로 채워지고 매번 뻔한 이야기가 되어 가는데 그걸 dc코믹스가 쉽게 넘진 못 하잖아. 이야기 퀄리티로 논하자면 dc코믹스 무비는 다크나이트 3부작 이후로는 그저 쓰레기일 뿐이니까.


마블의 시빌워나 타노스 사가가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아도 히어로의 삶과 일반인의 삶의 괴리가 있고, 타노스의 절반 소멸 같은 일이 일어날리 없기에 아무리 진지한 이야기를 담아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반면 이거는 인간의 삶을 담은 내용이라 히어로 무비가 다가가기 힘든 현실감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 반대로 이제 마블은 절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담을수가 없다. 디즈니 픽션물의 방향성도 그렇지만 초인이나 히어로가 나오는 이야기에서 휴먼 드라마를 담기에는 너무 캐릭터화 해 버렸으니까. 설령 캡틴 아메리카가 혈청을 안 맞은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기존의 캡틴 아메리카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한 쉽게 현실감을 갖기 힘들다. 반면 조커는 조커라고 하는 존재가 초인도 아니었고 그 기원도 불명에 작품마다 달라지는 성격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에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거니까.



다만 관객이 버렸기에 망한 영화가 된게 상당히 아쉽다. 솔직히 좀 그래.


뭘 전작을 부정하고 관객의 바램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건데.


그냥 전작과 대놓고 동일한 구성이었는데 부정하긴 뭘 부정했다고. 전작이 질문편이고 이번작이 해답편일 뿐인데.


아서가 조커가 되어야만 했나? 그건 마치 피해자에게 자살하느니 복수하라는 소릴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복수를 하면 그래 잘 했어 넌 미친놈이야 더 큰 짓을 저지르렴 이라고 하는거나 다름 없다. 잔인한 소리 아닌가? 진짜 잔인한 정신나간 소리라고 생각한다. 아서의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만 보고 싶어하는 거다. 아서는 머레이쇼에서 자기들 즐겁자고 남을 괴롭히지 말라고 했지만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조커 이름 달고 조커가 없는게 말이 되느냐고 하는 것도 억지인게 조커가 없던 영화는 아니었다. 조커라는 타이틀에 폴리 아 되를 붙인 것 처럼 조커라는 것을 하나의 현상으로서 표현한거지, 반드시 인물에다 갖다 붙여야만 조커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껏 인물에 붙이던 이름이 현상에 붙여진 것 뿐이고 오히려 팬이라면 이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단순히 특정한 누군가가 미친게 아니라 미친 놈들을 굴비처럼 줄줄이 꿰어 올리는 현상이 되었으니까. 특정한 누군가가 조커이길 바라는건 영화속 조커의 광신도들 같은 모습이고, 사회 현상으로서 조커를 바라보며 누구라도 조커가 될 수 있다고 바라보는 건 제2,제3의 조커가 나타나지 않길 원하는 측의 시선일거다. 어느 쪽이든간에 조커가 없던건 아니다. 단지 자기 마음에 드는 조커가 없으니 화를 내는 거지.


누군가가 원하는 형태의 조커라는 것도 막연한게 전편에서 코미디의 주관성을 언급 했듯이 조커 또한 주관적인거라 모두를 만족시키는 조커 같은건 허상이다.  애초에 전작도 호불호 엄청 갈리는 영화였잖아. 심지어 이번 작에서 강화한 인셀 요소가 전작에서도 엄청나게 논란되었었고 말야.


걍 반응들이 너무 지나쳐. 전작보다 심하게 심심하긴 한데 그거 때문에 별로다가 아니라 되게 이상한 부분에서 싫다고 하니 공감이 안 된다. 진짜 그때 조커2 망했네 어쨌네 떠드는 애들 시끄러워서 볼 생각은 커녕 시끄러워서 관심도 안 가긴 했는데 정작 보고 나니까 이 난리 칠 정도는 아니잖아? 라는 생각 뿐이다.


인터넷에서 떠드는건 진짜 어지간하면 체에 거르듯이 촘촘히 걸러야 해. 차단 할 수 있는 것들은 차단도 해야 하고.

2020년 6월 11일 목요일

영화 조커는 정말로 위험한 영화였는가?

2019년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조커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그 관심 중에서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관심인 모방 범죄. 현실의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총기를 가지기 쉬운 미국이란 나라에서 조커를 따라 할 거란 기우에 기반한 부정적 관심이 컸다.



그러나 나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관련된 폭동 시위를 보며 그들이 대체 왜 그렇게 조커를 무서워 했는가를 이전보다 더욱 이해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인종 차별과 흑인의 위치는 최근 글들을 찾아 보면서 어느 정도 이해 하기는 했다.

https://redtea.kr/pb/pb.php?id=free&no=10653
https://pgr21.com/freedom/86458




미국의 문제는 너무 복잡해서 한국인인 나로서는 솔직히 이해 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무리다. 당연하다. 내가 미국에서 살지 않으니까. 그래서 이 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솔직히 좀 주제 넘다고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아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 미국인들이 가난하고 무력한 백인인 아서 플렉이 외부적 요인으로 망가지는 과정을 통해 타락하여 살인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보고도 그들은 영화가 두렵다고만 하기 때문이다.


영화 조커가 정말 두려운 것은 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요인으로부터 철저하게 사회에서 배척 당해 왔다는 점이다. 일개 소시민에 불과 했던 아서가 미치광이 살인자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철저한 무관심과 폭력을 당해 왔는데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았다.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이 영화를 통해 현실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두렵다고 판단한다. 이게 더 끔찍하다.



아서 플렉을 둘러 싼 문제의 대부분은 복지의 문제다. 복지 사각 지대에서 아서는 1)학대를 받았고, 2)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 했고, 3)안정적인 직업과 의료 보장이 없었다. 물론 아서가 첫 살인을 저지르는 지하철 3인조의 경우에는 복지하고는 상관이 없다. 부유한 직업인 은행원 3인조에게 린치를 당하는 가난한 직업의 광대 아서와의 강자와 약자의 구조였다. 강자가 약자에게 폭력을 너무나도 쉽게 휘두를 수 있는 구조의 문제였다.


아서는 그 상황에서 살기 위해 총을 쏘았다. 살기 위해서 였다. 물론 세번째 발포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아예 발포를 하지 않았다면 아서는 죽거나 불구가 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불편해 하는 것은 이런 상황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클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말이다. 어째서? 왜?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할까? 내가 추론컨데 그들은 최소한 한번씩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향해

아서 플렉이 당했던 짓을 타인에게 해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복수의 두려움은 요인을 제공하였기 때문에 발생한다. 원만한 관계에 있는 지인이 칼을 들어도 칼 맞을 짓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의 칼날이 자신을 향할 거라고 꿈에도 생각치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칼을 들고 있는 순간 도망 칠 생각 부터 들 것이다. 미국인들은 조커가 불편해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도망을 쳐도 소용이 없으니 사람들이 못 보게 하여 사람들이 조커로부터 도망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조지 플로이드 시위 사건을 보면 정작 트리거가 된 건 백인이 아니었다. 흑인이 죽을때마다 시위가 일어난다. 아서 플렉은 그가 죽던지 조커가 되었던지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흑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크리스 락의 스탠딩 코미디 중에 이런 코미디가 있다. 뚱뚱한 여자는 날씬한 여자에게 뭔 말을 해도 돼. 하지만 날씬한 애들은 뚱뚱한 애들에게 그러면 안 되지. 그건 너무하잖아?

아마 이 말이 흑인이 내뿜는 폭력 시위에 대한 그들만의 답이라고 생각한다. 약자는 분노 할 자격이 있다 라는 전제를 깔아두고 흑인이 죽을 때마다 시위를 빙자한 방화와 약탈을 반복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인종차별과 총기규제 등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까는 크리스 락 역시 아시아 혐오는 자연스럽게 저질렀으니 그 역시 똑같은 가해자일 뿐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백인 남성이 분노 하여 사람을 죽인 조커라는 영화가 과연 그들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얻었냐는 것이다. 그랬다면 당장 조지 플루이드 시위 처럼 미국 전체가 들고 일어났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결국 조커는 생각만큼 위험한 영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조지 플루이드 사건을 영화화 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정말로 위험한건 서로가 가해자인 상황을 공유하며 개선 할 의지가 없는 미국의 모습이다. 미국은 차별이 만연한 국가고, 겉으로는 인종 차별을 터부시 하지만 정작 차별이란 차별은 갖가지로 다 하고 있는 나라다.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고 흑인이 아시아인을 차별하고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이 나라는 혐오로 살아간다. 그러나 오로지 흑인의 죽음만이 특별해지는 것은 정말로 내로남불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DC 영화의 조커는 흑인을 캐스팅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보다 더 개연성이 넘치는 캐스팅이 어디 있겠는가? 흑인 조커의 분노는 정당 할 것이다. 조커는 배트맨을 때려도 되지만 배트맨은 조커를 때리면 안 돼. 그건 너무 하잖아?



여담.
최근 조커에 대해 그런 평가가 있다. 조커는 극한의 광기를 가진 매우 지능적인 캐릭터다 라는 평가다.

그런데 이는 사실 시리즈가 계속 되면서 생긴 문제다. 배트맨의 시리즈가 계속 될 수록 배트맨의 적은 더욱 강해지고 똑똑해진다. 그런데 배트맨의 아치에너미는 조커이기 때문에 다른 적들보다도 조커가 더 뛰어나야만 하고, 그 결과 조커는 매우 치밀하면서도 혼란스러운 캐릭터여야만 했다. 사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배트맨 영화인 다크나이트에서 가능하게 되었으니 사람들은 더 이상 멍청한 조커를 원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힘도 쎄고 머리도 똑똑하고 별의 별 능력을 지닌데다 솜씨도 좋고, 그런데 미친 캐릭터. 하지만 조커가 처음부터 그런 캐릭터였던 것도 아니다. 렉스 루터가 처음부터 엄청난 천재는 아니었듯이 히어로가 강해지면서 덩달아 강해진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히어로를 약하게 만들 일은 없으니 조커도 렉스 루터도 강력한 악역이 될 수 밖에 없겠지. 어떤 사이트에서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가 조커 답지 않게 지능도 광기도 옅다는 글을 봐서 이야기 해 봤다. 조커는 원래 인간이다. 인간이 광기에 물든 것을 위협적인 존재로 표현을 한 것 뿐이지 범접할 수 없는 초인이 미친 것은 본말전도에 가깝다. 애초에 악당의 힘이 초인급이면 미치지 않더라도 악한 마음이 있으면 그걸로 악당 역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조커는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초인이 나쁜 마음을 가져서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 미쳐서이기 때문이고, 그 광기가 전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염되는 광기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조커가 될 수 있다.

2019년 11월 7일 목요일

조커 - 넌 아마 이해 못 할 거야


어제부터 조커 VOD가 올라 왔는데 어제는 내가 일진이 안 좋아서 영 감상 할 컨디션이 아니다 보니, 오늘에서야 봤다.


놀라우면서도 평범하고, 공감과 비공감대의 영역을 오고가는 정말이지 난해한 영화가 아닐수가 없다.

그리고 조커에 신나 밈으로 활용한 게시물들에 노출되어 부분적으로 스포일러를 당하면서 감흥을 느끼지 못 한 부분도 있었던터라 많이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이 영화는 부디 스포일러 없이 그리고 배트맨도 조커도 염두해 두지 않고, 오로지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에만 집중해야만 수월하게 감상이 될 것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스포 없는 부분만 이야기 하자면 영화 자체는 매우 대단하다.  배경음도 녹아들고, 배우의 연기하며 분위기 모두 압도한다.

처음 30분 정도는 아서 플렉에게 깊은 공감으로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문제가 아닌 타인에 의해 고통받는데 이는 형태는 다르지만 누구나 겪을법한 혹은 겪었을 법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아서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과 비추어 보게 만든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있으니, 보고 싶지 않다면 패스하기를.








그러나 그가 좋아하던 머레이쇼를 보며 망상에 젖게 되는데 이후에도 종종 망상과 현실이 교차되며 무엇이 허상이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기 힘들게 되며 아서 플렉이 겪고 있는 고통과 현실에 접근하기 힘들게 된다. 초반에 그를 바라보며 다가갔던 공감대는 어느새 거리를 두게 되고, 그의 망상이 벽이 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지만 진실을 확신 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든다.

그런 상황과는 상관없이 아서의 상황은 꼬여 가기만 하고 급기야 노망난 어머니로부터 토마스 웨인과의 관계를 알게 되는데, 이는 정말로 지독하리만치 치명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현실이 괴로운 사람 특히 아서처럼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갑자기 툭하니 아버지가 대기업 부호였다 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가정환경이 불행 할 수록 내가 더 나은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하는 생각을 갖기 마련인데 이는 안 그래도 망상증이 있는 아서에게 있어 토마스 웨인은 아버지의 존재를 그리워 하며 거지같은 삶 속에서 그를 구원 해 줄 빛으로 여겨 졌을 것이다.

허나 그러한 아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실은 어머니가 아서처럼 혹은 아서가 어머니처럼 아서의 어머니는 망상에 미친 사람이라는 반응 뿐이었고, 어머니를 믿고 있던 아서에게 있어서 그런 반응은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아무도 그를 존중하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고 무시하는 세상 속에서 광대 분장을 했을 때 자신을 공격한 화이트칼라 직종의 3인방을 총으로 쏴 죽인 것이 세상의 공감을 사고, 아서가 분장한 광대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아서의 심정이 변화하게 된다.

아버지처럼 동경하던 머레이는 그의 코미디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만들고, 아버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토마스 웨인은 어머니를 미친사람이라 하며 자신을 공격하고, 사장은 자신을 무시하고 그를 린치에 몰아넣고 해고를 시키고, 직장동료는 그를 배신하고 나몰라라 하고, 그가 꿈꾸는 코미디언으로서의 길은 가망이 없고, 연인이라 생각했던 같은 아파트의 여자와의 관계는 그저 망상에 불과했고, 사람들은 광대인 자신을 향해 존중을 하지 않고, 그에게는 원치 않는 상황에 웃음이 발작하는 병이 그를 괴롭히고 방해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병원에서 어머니의 기록을 찾아 보던 중 그는 그가 입양된 아이이고, 어머니에게 학대 당해 억지로 웃음이 나오는 병을 앓게 되었고, 그 어머니가 망상증에 걸린 미친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를 둘러 싼 모든 관계들이 마치 그를 거부하듯이 끊어지고 벽이 세워지는 듯한 그 와중에 자기 자신은 끝없이 추락하는 듯한 상황속에서 아서는 지하철에서 자신을 괴롭힌 3인방을 죽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얽매이고 옥죄는 모든 것을 털기 위해


어머니를 질식사 시키고, 자신에게 총을 준 사실을 회피하고, 지하철 사건과 관련하여 경찰의 물음에 입을 맞추려고 회피하는 동료 랜들을 찔러 죽이고, 머레이쇼에 출연하여 그가 지하철에서 3명을 죽인 범인임을 공개하고, 방송에서 자신을 조롱했던 머레이를 총으로 쏴 죽인다.


그 과정속에서 그가 심정적으로 모든 짐을 내려 놓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계단의 춤사위는 그에게 공감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모든 것이 해제된 그의 심정에 다가가게 만들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생각 할 것들을 만드는 영화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아서의 망상일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맞물려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느낀 몇가지를 이야기 하자면 일단 첫째로 아서가 스탠딩 코미디에서 말한 부분이 너무나도 와닿는다.

아서는 학교 가기 싫다는 말에 어머니가 공부 열심히 해야 나중에 먹고 산다고 하고 이에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말로 응수 한 것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부자들은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부분부터 소리는 끊기며 아서의 망상으로 넘어가는데 나는 이 부분이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으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영화의 초반에 공감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그것은 아서를 둘러 싼 거지같은 환경과 존중받지 못 하는 상황이 현대에서는 서비스직에서 주로 발생하는 일이고, 아서가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말이 마치 서비스직을 할건데요 라는 말처럼 받아 들여졌기 때문이다.

서비스직의 직업병 중 하나는 원치 않는 상황임에도 감정을 억누르며 웃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이는 웃고 싶지 않은데도 억지로 웃어야 하는 직업. 아서의 직업인 광대와 웃고 싶지 않은데 웃게 되어 버리는 아서의 정신적 질환이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서비스직이 경쟁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선택하기 쉽다는 점에서 이는 블랙 조크보다도 더 신랄하게 다가온다. 스탠딩 코미디에서는 코미디언이 될거에요 라고 했지만 이는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라 결과론적으로 될 수 밖에 없었던 점에서 자아비판이라고 보여질 정도이다.


또한 아서를 괴롭혔던 회사원 3명의 죽음을 광대라고 하는 무서운 이미지에 당한 희생양처럼 내보내는 언론은 마치 착한 사람이 당한 것 처럼 이야기 하지만 영화를 통해 보여진 그들의 행동은 결코 착하지 않았다. 아서가 말한 "내가 죽었다면 내 시체를 밟고 갔겠지 난 거들떠도 안 보면서 토마스 웨인이 추모하니 놈들 죽음은 슬프다?" 라는 것처럼 아서가 당했더라면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회적 약자인 아서의 코미디 영상을 틀고 조롱했던 것 처럼 사회적 약자를 짓밟고 조롱하는데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사람 모두가 악독하지 않다며 외면하려 한다. 머레이는 경찰 두명이 사경을 헤맨다고 했으나, 정작 경찰이 지하철 같이 좁은 곳에서 먼저 총을 발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따돌림을 당해야 할 대상을 만들고 사회적으로 안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테두리 밖에서 그들을 공격하는데 여념이 없다. 심지어 토마스 웨인은 그 세명이 죽은 이유에 부유한 사람들을 시기하여 공격하는 겁쟁이들의 소행으로 치부하는데 이는 정작 죽은 그들의 행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 부유한 자들이 두려워 하는 이유에 불과하다. 진실과 상관없이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유를 만드는 것은 마치 아서의 망상증과도 유사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그렇게 아서를 태우고 가는 경찰차 바깥으로 보여지는 폭동에 의해 안전의 주체가 바뀌어버린 고담시를 보며 아서는 즐거워한다.

물론 그 회사원 3명이 죽을만큼 나쁜 짓을 한것이 아니다 라고 할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서를 두려워 하지 않았기에 거리낌 없이 아서를 괴롭힌 것도 사실이다. 죽을만큼 나쁜 짓인지 아닌지 그것은 아서에겐 주관적인 것이었다. 그가 말했던 코미디의 주관성처럼 그 세사람이 죽을만큼 나쁜 놈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철저하게 아서의 개인 문제다. 그리고 그것이 죽을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입장이다. 그리고 이 둘을 나누는 것은 그것이 나의 일인가 나의 일이 아닌가 그것 뿐이다.


또한 아서는 극중에서 보여지는 모습만 보면 철저하게 선하게 행동하려 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게리를 놀릴때나 지하철에서 3명이 여자를 둘러 싸고 괴롭힐때도 적극적으로 막지는 못 했어도 그에게는 죄책감이 있었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노트에 적어 놓은 "정신질환의 가장 나쁜 점은 사람들 앞에서 아닌 척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럼 그는 최소한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게 정중했다. 하지만 그가 더이상 착해지기를 포기 했을 때 머레이쇼에서 말한 "아닌 척 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처럼 그는 그 누구보다 위험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역으로 봤을 때 착한 아서를 기준으로 봤을땐 그를 둘러싸 린치를 가한 증권가 3인방은 아서의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람이었고, 아서가 들고 있는 광고판을 부수고 아서를 공격한 불량 소년들은 아서의 생계를 공격했고, 아서의 영상을 틀어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머레이는 아서의 존엄성을 짓밟았고, 아서에게 학대를 가한 어머니는 아서의 미래를 망가뜨려 놨다. 결국 아서는 "내 죽음이 내 삶보다 가치 있기를"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몰리고 있었다. 조커가 되어버린 아서가 조커를 공격했던 사람들에게 위험한 사람이 된 것 처럼 아서를 공격했던 사람들 역시 아서에겐 위험한 사람들이었다. 단지 죽지 않을 정도로 간당간당하게 살아 있고, 자살을 생각하지만 거 봐 결국 안 했잖아 라고 하면 그만인걸까? 아서를 망가뜨린 책임을 나누면 기쁨이 배가 되기라도 하는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 역시 범죄자들이다. 단지 아서가 그들을 죽였기 때문에 모든 죄가 아서에게 돌아간 것 처럼 보일 뿐 아서를 망가뜨린 그들은 결국 그에 따른 결과를 맞이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머리속이 계산으로만 돌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걔넨 아서를 안 죽였는데 아서도 죽이면 안 되지 라고 말이다. 그러나 아서가 죽었다면 아서는 복수가 가능 했을까? 복수라는 것 자체가 가능 했을까? 랜든을 죽이고 난 뒤 아서는 게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게리. 가도 돼. 나한테 잘 해 준건 너 뿐이었어" 게리는 아서의 복수의 대상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게리는 아서를 망가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지타산적으로 손해를 보고 싶지 않았다면 죽지 않을 만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괴롭히지 않아 게리처럼 복수를 당할 가능성을 0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아서의 증상이 악화되기 시작하는 것은 아서를 향한 긍정적인 관심이 없어지면서 였다. 정신상담의는 아서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 사회적 지원이 끊겨 약까지 끊기고, 입양된 아서가 학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알지 못 했고, 그가 불량 소년들에게 당한 일을 사장이 관심 없어 하고, 그에게 총을 준 것을 랜든이 모른체 하고, 어머니는 아서가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말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토마스 웨인에게만 집중하고 아서에겐 무관심하며, 토마스 웨인은 주관적인 해석으로 광대라는 롤에 감추어진 아서를 겁쟁이로 일축하며, 경찰 또한 아서를 조롱했고, 동경의 대상이던 머레이는 정작 그를 조커라고 불렀던 것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반면 아서가 죽인 3명에 대한 것이 언론을 통해 점점 부풀려지며 시위대가 생길 정도로 아서의 부정적인 행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자 아서는 이에 대해 반응을 하게 되고 이는 아서를 안 좋은 쪽으로 바꿔놓게 만든다.


내가 너무 아서를 두둔하는 것 같지만 조커는 그저 결과일 뿐이다.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결과. 아서가 너무 특별해서가 아니다. 아서는 되려 너무나도 평범하다. 그와 같이 심각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더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모른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기 때문에 설령 조커같은 사람이 더 등장하더라도 사람들은 조커 영화에서 보여진 것 처럼 악당이라 여겨지는 대상에게 그들만의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 낸다. 조커가 만들어진 과정. 최초의 살인을 하게 만든 3명의 행동에 대해서는 무시하듯 조커가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서는 깊게 파고 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시위를 주도하고 폭동을 일으킨 자들 역시 관심이 없다. 부유한 자들이 아서의 행동을 부유한 자에 대한 겁쟁이 같은 행동이라 하듯, 폭도들은 부유한 자들을 대상으로 공격을 시작한다. 결국 고담에서 아서는 사라지고 조커만이 남았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틀렸을 수가 있다. 영화가 다분히 해석을 모호하게 하게끔 아서의 망상과 정신병원씬을 통해서 정확하게 이야기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모호함이 다른 의견을 만들고, 그렇게 생각을 하게끔. 아서같은 사람이 조커가 되지 않을 수 있게끔 사람들이 생각 할 거리를 던진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특별하다.


이 영화는 조커라는 캐릭터와 배트맨이라고 하는 장르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까지 보여진 조커라고 하는 캐릭터와도 배트맨이라고 하는 영화가 내세운 의미와도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름에도 불구하고 매우 적나라하게 조커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킬링 조크에서 조커는 누구나 타락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다크 나이트에서는 조커가 보여주고 싶었던 인간은 악하다는 점을 선박 폭파에서 실패했으나, 정작 조커 영화에서는 고담 시민 모두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기주의로 똘똘 뭉쳤음을 보이고 있기에 기존의 배트맨 시리즈와는 전혀 다르기에 괴리감만 느껴진다. 다크 나이트에서 보여주었던 시민들의 선한 모습은 대체 조커 영화에서는 어디에 갔는가? 그래서 배트맨 시리즈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배트맨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테러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항상 선하게 행동하려 한다는 것이겠지만, 이 영화는 조커라고 하는 캐릭터의 탄생을 보여주기 위해 모두가 악한 조커만큼이나 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이 영화가 말도 안 된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고담 시민들의 악이 너무나도 가깝기 때문이다. 다크나이트에서 보여주었던 선보다도 더 와닿는 거리감이 짧은 악이기에 아서에게 공감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볼 때 기존의 배트맨 시리즈를 생각하면 안 된다. 연결이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조커의 롤을 염두해도 안 된다. 이는 사람이 타락해 가는 과정에서 결과가 조커라는 이미지를 쓰고 있을 뿐, 기존의 배트맨 영화에서 보여지는 조커의 밑도 끝도 없는 광기와는 절대적으로 대치된다. 기존의 조커들의 광기에서는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커의 행위는 절대적으로 테러로서 다가오며, 공포스러운 반면 이 조커 영화에서 보여지는 아서 플렉은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이유없는 공격이 아니기에 이를 공포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아서의 행위를 이해 하느냐 이해 못 하느냐로 나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커의 행위를 이해 할 수도 없었고, 이해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서의 행위를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최소한 그 행위가 왜 어떤 과정을 통해서 발생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영화 자체가 무용스러운 것이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조커와는 완전히 이질적이게 된다. 물론 이 또한 엔딩씬에서의 연출로 인해 그리고 아서의 망상증으로 인해 확신 할 수 없다. 특히 아서의 망상증을 이렇게 밀도있게 표현한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기에 너무나도 조커스럽다. 모든 배트맨 시리즈에서 밥먹듯이 거짓말을 한 조커는 그 거짓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의문을 표할 필요가 없었다. 킬링 조크에서 보여지는 조커의 과거나 다크 나이트에서 말한 조커와 아내와의 관계나 하나 같이 그것이 사실이어도 상관 없고 거짓이어도 상관 없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아서 플렉의 망상증은 아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녹아들어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항상 의심하게 만든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그러한 혼돈, 혼란스러움, 정말이지 조커 그 자체의 심연을 들여다 보게 만든 가장 조커 다운 조커였다.



하지만 그 망상증에 의해서 이 영화는 이해를 하기 힘들게 만들고, 그러한 이해의 거리감과 더불어 아서라고 하는 캐릭터가 받는 시달리는 고통과 환경 역시 이를 이해 할 수 있는 사람과 이해 못 하는 사람으로 나뉘며 점점 이해의 영역이 달라지게 된다. 심지어 미국의 총기 소지와 폭동은 한국인으로서는 이해 하기 힘든 점도 있을 것이다. 더더욱이 월드컵 때 자동차 위에서 난동을 피운 정도 외에는 딱히 폭동다운 폭동도 없었던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폭동현상을 이해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여러 이유 때문에 이 영화가 그만큼 논란이 되고 있고 많은 말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어느 정도 공통점이 보인다. 누구는 조커가 되기 전의 아서 플렉을 보고, 누구는 아서 플렉을 한참 지나친 조커를 본다. 누구는 미친 사람이 날뛰는 영화라고 하고, 누구는 사회가 만든 괴물이라고 본다. 결국 서로 보고 싶은 영역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 참으로 교묘한 영화다. 망상증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나뉘지도 않았을텐데.

하지만 개인적으로서 이 영화를 그저 미치광이가 날뛰는 불쾌한 영화라고 생각하거나 코스플레이나 하며 유희적 소모거리로 취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이해 못 할 거라고 본다.

너는 조커가 되기 전의 아서 플렉을 경험 한 적이 없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