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0일 일요일

권위의 아이러니함

오늘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츄리닝 쳐 입고 온 기자가 있다 라는 제목의 글을 여러 커뮤니티에서 보았다.

그 글을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츄리닝 입으면 안 되나?"


라는 것이었다. 츄리닝이든 뭐든 복장이 정말로 문제였으면 현장 요원들이 출입을 제지하였을 것이고, 규칙으로 정해져서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면 더더욱 걸러 내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동사무소 통장 회의도 아니고 대통령 기자회견이니까 더더욱 그러 할 것이다. 따라서 별 문제 없었을 거라 판단하기가 쉽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모니터 너머의 네티즌이 아니라 현장의 직원들일테니까.

그러나 댓글들은 그렇지 않았다. 버릇이 없다, 기레기 수준이 어디 가냐, 요즘 기자 하기 참 쉽네, 프로의식이 결여된 사람 등등 사진속 대상을 향해 온갖 비난과 조롱, 욕설이 오고 갔다. 정상적으로 판단하는 커뮤니티가 거의 드물었다.


1~2시간쯤 지난 뒤 여러 네티즌이 조사를 하면서 해당하는 사람은 기자가 아닌 현장 스태프라는 것이 드러났지만, 이미 그 글에 열을 올렸던 사람들은 까맣게 잊은채 다른 게시글에 열을 올리러 간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대부분의 인터넷 논란은 이렇게 잊혀져 가는구나. 아무런 관심없이 욕 한바가지 쏟고 가면 그만이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네티즌의 속성보다도 놀랍고 안타까웠던 것은 바로 탈권위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네티즌들이 엄격 근엄 진지하게 숙청 할 대상을 찾아 눈을 부라리는 관리자 마냥 어디서 감히!를 시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권 혹은 오바마 임기 초기때였다면 오히려 탈권위의 상징이라며 추켜 세웠을 것 같은 일은 이제 엄격하게 잣대를 들이밀고 두번 다시 기어 오르지 못 하게 밟아야 하는 일처럼 되었다는 점이 놀랍다.


이유는 안다. 만약 문재인이 탈권위를 내세우고 지금까지 기조를 유지했더라면, 그리고 야당이 문재인의 탈권위를 공격했더라면 지지자들은 방어하기 위해 더더욱 탈권위에 해당하는 사례를 들고 나오며 방어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문재인은 탈권위와는 거리가멀고, 야당도 그런걸로 공격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자는 문재인 지지자들의 적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보호 해 줄 이유도 가치도 없기에 가차없이 공격한다. 설령 그 대상이 기자가아니었어도 누가 기자래 라고 하면 우르르 몰려서 공격을 한다. 사실 여부는 그리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겐 과거 노무현처럼 탈권위에 대한 공통된 의식 따윈 예전에 날아갔을 것이다. 필요로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전에 인터넷 게시글들을 보던 중 자신이 문재인 지지자라고 밝힌 사람이 노무현 정권은 실패한 정권이다 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게 그거 한번 뿐이었으면 모를까 의외로 종종 비슷한 의견이 문재인 지지자라고 하는 사람들에서 나오는 것을 봤기에 놀라웠다.


나는 노무현 정권의 과오가 있긴 해도 실패까진 아니라고 생각하였길래 동의하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확실히 노무현 정권은 실패한 정권이다. 왜? 지지자들에게 버려졌기 때문이다.


왜 문재인 지지자가 노무현 정권이 실패한 정권이라고 한 것인지 나는 오늘 권위에 대한 지지자들의 기조를 보면서 이유를 느꼈다. 오늘 보인 그들의 모습에서 탈권위에 대한 그 어떠한 흔적 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DNA가 다르다. 노무현이 문재인 정권을 만드는 토양이 되었을 지언정 문재인 지지자들은 노무현의 흔적을 지우기에 바쁘다. 노무현의 탈권위. 아마도 그들에겐 탈권위 그것이 지난 정권의 크나큰 오점이며 적들에게 공격을 할 빌미를 준 이유라고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경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상대에게 얕보여서는 안 된다 라고 생각한 것이 더더욱 권위에 매몰되게 만든 듯 싶었다.

그런 점에서 확실히 노무현 정권은 실패했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 줄 씨앗. 정신. 가치가 전달되지 않은 채 열매만 이름값만 가져 갔다. 지지자들은 그의 생각을 받아들이길 스스로 거부하였고, 결국 그는 홀로 남은 외톨이가 되었으니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 할 것이다. 문재인 지지자가 왜 노무현 정권은 실패했다고 말했을까. 그건 문재인을 지키기 위해 노무현과 같은 길을 가지 않게 하려는 방어기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노무현은 또 다시 고립되었다.


나는 노무현의 탈권위 정신을 존경한다. 권위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 대접 받고 싶다고 해서 권위가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여야 그에 걸맞는 권위가 생기는 것이 당연지사다. 탈권위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권위를 내려 놓은 상태에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믿고 따를지, 아니면 무시할지. 내려 놓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을 무시하고 따르지 않을 것을 두려워 하여 이미 만들어진 권위를 쉽사리 내려 놓지 못 한다.

그렇기에 나는 노무현의 탈권위 정신은 정말 용기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리고 열혈 지지자들이나 민주당 관계자에게 그 결과는 참혹 했을 것이다. 두번 다시 떠올리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맹목적인 동조보다 가치의 확인을 중요시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존경 해 마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현 정권에서 노무현의 그림자는 찾아 볼 수 없다. 대통령이 노무현의 친구라는 타이틀을 달고 흐름을 주도 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온전히 문재인만의 정권으로 자리 잡았다. 성공했다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을 지우려는 문재인 지지자들의 모습을 보며 씁쓸한 성공이란 생각이 든다.


나때는 말이야 라고 말하기는 죽어도 싫지만 정말 나때는 그랬다. 탈권위를 내세우며 좀 더 자유로운 수평적 관계가 중요시 되곤 했다. 그런데 그게 시간이 지나서는 이렇게 되어 버렸네? 권위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하고 엄근진하게 서열을 중시하고? 그렇지만 어떤때는 사이버 강의에서 교사가 구독자 수를 달성하여 롤을 하고 좋아요를 받고 수평적 관계에 편안해 하고 격식없이 친근한 모습을 강조하고? 안다. 이게 다 대상이 달라서다. 만약 박근혜,이명박 정권이었으면 박근혜,이명박 정권을 까기 위해 기자의 태도는 도구가 되었을 것이고 옹호를 하거나 유유상종이라 비하 되었을 것이다. 만약 기자가 자기들 편이었으면 한번은 봐준다 이런 식일수도 있겠지. 상대에 따라 내로남불 냉탕 온탕 입수하는 속도가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니까 탈이 나는 거지.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탈권위 탈권위 할 땐 언제고 이젠 권위를 안 지키면 죽일 놈이 되었다. 어디서 젊은 꼰대들을 수입 해오기라도 한 걸까? 갑작스레 꼰대가 늘어났다고 보기에는 정말 이상한 광경이다.


지금쯤 영문도 모르고 문재인 지지 커뮤니티에서 조리돌림 당하고 있을 해당 사진의 당사자는 많이 심란 할지도 모르겠다. 2시간 지난 글에 사실 확인이 들어가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듯이 이미 폭풍이 지나가고 아님 말고가 되어 버린 관계로 그리 큰 타격이 되진 않을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사실 확인 없이 누군가를 쉽사리 생매장 시킬 수 있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점에서는 참 통탄 할 일이다.


다시 한번 처음 떠 올렸던 생각을 한다. 츄리닝 입으면 안 되나? 뭘 입든 상관하지 마라. 어차피 판단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