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5일 일요일

잡담

 1. 약 먹는 타이밍이 점점 어긋나고 있다.

밥을 먹는 시간도 좀 어긋나는터라 그 영향을 받아 더욱 심하게 어긋나고 있다. 오른쪽 눈의 시력이랄까 좀 흐릿한건가 뭔가 좀 시야에 영향을 주는게 점점 심해지는터라 당뇨약을 제대로 먹어야 할거 같긴 한데 요즘 삶의 의욕이 없어서 그냥 이대로 죽었으면 하는 생각 밖에 없네 


2. 미각이 조금씩 차이가 생기고 있다.

일전에 먹던 제품들의 맛이 예전에 먹었던 그 느낌이 나지 않는다. 제품 자체의 맛이 바뀌었을수도 있긴 한데 감자면은 여전히 감자면인게 좀 다행인 느낌. 밀봉된 제품이라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기는 한데 요즘은 먹는게 정말 신통치가 않다. 맛있다는걸 거의 못 느끼고 있다. 여러모로 좀 슬프네.


3. 그래서 외식을 조금 했는데

하필 간 요리점이 짝퉁 라멘집이라 여러모로 실망이었다  걍 프랜차이즈에서 제품 받아서 그대로 조리하는게 전부인 라멘집이라 면은 제대로 풀어지지도 않았고 맛은 밍숭맹숭하기 짝이 없어 그나마 시치미 같은 조미료들은 구비가 되어 있고 자유롭게 반찬을 가져갈수 있어 반찬과 조미료로 맛을 채워야 했다. 라멘집이 진짜 대충이란 느낌인게 보통 라멘집이란 느낌을 내려고 일본틱한 물건을 두기 마련인데 이 라멘집은 포스터 위주로 때우고 있지만 그 포스터의 그림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빙 이미지 생성기로 뽑은 듯한 허접한 ai그림 뿐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그럴싸하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일본어를 아는 사람 입장에선 문장이 되지 못 하는 적당히 비슷하게 생긴 일본어와 한자 같은 것이 적혀 있기에 ai그림 패턴에서 드러나는 손으로 면을 집어먹는 것과 함께 정말 수준이 떨어져 보였다.

이 동네에서 좀 오래 살았어도 음식점은 별로 찾지 않게 되는 이유가 이 동네는 제대로 요리하는 음식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초심을 유지 안 하기도 하고. 예컨데 여기 뚜레쥬르도 오픈 처음에는 카카웨뜨가 그렇게 식감이 뛰어나고 크림도 좋았는데 지금은 그 식감 온데간데 없고 크림은 느끼하기만 하다. 맛이 좀 바뀌어도 모를꺼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4. 냄새가 너무 거슬린다.

몸에서 나는 냄새인지 요에서 나는 냄새인지 되게 찌렁내에 가까운 냄새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지금도 괴롭히긴 하는데 냄새의 정도는 좀 줄어든 편.


문제는 이게 동시에 일어난 두가지 일 때문에 뭐가 원인인지를 알기가 힘들다.

하나는 요를 세탁했지만 발코니 베란다 배수관에 균열이 생겨서 그쪽에서 물이 쏟아지는터라 발코니 내부가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생기기 쉬운 상황이 되었다는 점. 마찬가지로 습기가 가득하니까 건조도 쉽게 되질 않았다. 정말이지 왜 이렇게 괴롭히려는 듯한 일들만 자꾸 생기는지 알수가 없다. 그런 요를 일단 말랐다고 판단하여 가져 왔던 그 시점에서

곰팡이가 핀듯한 신 맛이 나는 쌀로 밥을 먹었던 것. 이 두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서 뭐가 원인인지를 알수가 없다.

지금은 아마도 곰팡이쌀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은게 곰팡이 쌀을 버리고 밥솥을 나름대로 닦고 쌀을 바꾸고 나서 점점 냄새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본래 먹는것은 몸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몸 냄새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급적 먹는게 좋아야 여러모로 삶의 질이 올라간다.


일단 배수관 문제는 관리실에 수리 신청해서 해결은 됐는데 하아... 왜 이렇게 거지같은 일들만 자꾸 생겨나는 걸까 싶네.



5. Ceo 암살범 루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처음 알았다 

뉴스라는 것들이 전부 계엄령과 탄핵 이야기만 해대니 도통 다른 뉴스를 알수가 없다. 이제는 한국의 언론이 죄다 미친놈들처럼 보인다. 매일 매시간 똑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하기만 하는데 이것들은 이딴게 언론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떤 시간에 어떤 채널을 틀어도 뉴스는 전부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 이것들은 이제는 더 이상 언론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내가 다른 뉴스를 이제는 인터넷 유머 게시판을 통해 접해야 하는 상황이다.


언론의 한심함은 일단 내버려두고 ceo. 보험사의 ceo를 암살한 사람이 영웅 취급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좀 여러모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보통은 사람을 죽이면, 그것도 우발적인 살인이 아닌 계획살인인 경우는 테러를 두려워 한다. 그런데 이 경우는 보험사들이 로비를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항을 내세워 가입자들이 불리해지는 상황을 유도하려 했고 이 총격 암살로 그 행동이 저지되었기에 보험사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이 많은 미국에서 긍정적인 취급을 받고 있다.


내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암살범의 행동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사람들의 반응과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다.


일단 암살로 불리한 조항의 적용은 막았지만 그걸로 해결된건 아니다. 애초에 미국은 자유를 중시하여 강제적으로 가입하는 공공의료보험이 없었기에 개개인이 스스로 보험을 찾아 들어야 했고,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보험이 없으니 법적인 시비에서 유리한 병원이 병원비를 높게 받아도 개인이 어쩔 도리가 없는게 제일 첫번째의 큰 문제다. 보험사가 보험료를 지불하려 들지 않는 것 보다 애초에 공공의료보험이 없으니 병원과 보험사가 유리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고 그것을 오바마 케어로 극복하려 했으나 반대측인 공화당이 지속적으로 선동을 통해서 무력화를 시도하려는 등 공공의료보험의 적용에 대해 반대하려는 세력이 있는게 문제다. 트럼프는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고 트럼프 케어로 바꾸려고 했지만 실제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적어지기에 트럼프 케어 지지율은 바닥을 기었고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지는 못 했지만


지금은 또 그때와는 다르다. 그 당시 대통령이던 트럼프와는 달리 지금 의회는 완전히 트럼프 손아귀에 있는 유리한 상황이고 트럼프는 오로지 자신에게 유리한 인사만 뽑고 있다. 이런 인간을 두번이나 대통령으로 뽑아줬으니 보험사에겐 기회라 생각되었을 것이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항으로 바꾸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애초에 이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상 더더욱 나빠질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한명이 암살을 했다 한들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뭐 정확히는 보험사 ceo 마냥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원한관계에 놓인 사람들이 직면할 문제는

죽이니까 멈추네? 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이다.


한국도 지랄을 해야 듣는 척이라도 한다 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듯이 더 이상 조용히 당하고 살아봐야 해결되는게 없다는 것이 요즘의 흐름이다. 좋게 좋게 말하면 듣는 놈이 없다는 인식이 강할수록 강경책으로 해결하려 들 것이고 그 과정에서 피해가 커질텐데 미국은 또 하나의 자유인 총기 소지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니 그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 사건에서 ceo는 흙수저 출신이고 암살범은 엘리트 출신이라는 것에서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면서 범인을 추켜세우는데 이거는 정말 뭐랄까 문제인식이 없는 것 같다.


일단 ceo가 흙수저니 하는건 별 신경 쓸 거리도 없다. 왜냐. 보통 성공을 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인간들은 정상인이 없다. 1)빠르게 2)커다란 성공을 거둔 자들은 보통 도덕과 담 쌓고 이익에만 몰두하였기에 그 자리에 오르기 마련이다. 청렴하고 도덕적인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꼼수와 착취를 통한 이익을 넘기란 어렵다. 그 ceo는 흙수저인게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인간은 이기적이고 그 중에서도 사이코패스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이거는 그저 그런 인간이 흙수저 출신일 뿐 그런 인간들은 계층을 막론하고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엘리트 출신의 암살이다.


그의 계획은 치밀했고 제법 연습을 거쳐 성공률을 올려 놓았을 뿐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 발생한 불량 문제에도 침착하게 대응해 결국 성공시켰다. 아무리 경호팀이 없다 한들 초보자가 암살에 성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암살은 성공했으며 의도적으로 잡히기 쉬운 상태로 돌아다니며 메세지를 담은 물건을 두는 등 도주의 계획이 없었기에 그저 신고로 잡혔다는 점이 무서운 점이다.


뭐가 무섭냐. 엘리트 출신의 살인 계획이 일반인의 살인계획보다 더 정교하며 침착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도 이전 선거에서 트럼프는 두번이나 암살 당할 뻔 했는데 둘 다 실패했고 그 둘의 계획은 엉성하고 용의자의 정신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 두 건의 암살 미수와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일반인이라면 살인 계획을 세웠어도 유사시의 상황을 대비하는 경우의 수가 그리 많지 못 하다. 성공을 시켰어도 도주나 은닉 역시 경우의 수가 한계가 있다. 애초에 가지고 있는 카드가 엘리트,부유한 출신에 비하면 사용 할 수 있는 것이 적으니 더더욱 사고방식에 제약을 받는다. 반대로 부유하고 엘리트인 사람은 스스로 암살을 훈련할 방법을 찾기도 배우기도 훈련하기도 쉬우며, 이를 처리하는 방법 또한 경우의 수가 많다는 점이다.

그가 숨지 않으려 했기에 잡혔을 뿐이지 작정하고 도주와 은닉 계획까지 세웠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걸 영웅화 하는건 진짜 아니라고 본다. 아마 같은 엘리트 출신은 이렇게 생각 했을지도 모른다.

어? 생각만 했던게 가능하네? 라고 말이지.


누군가를 암살 할 생각을 했어도 그게 성공률이 얼마나 될지 반신반의 했을텐데 저것도 하다보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게 ceo가 죽었으니 뉴스에도 나오는거지 영화 조커에서 나온 말처럼 사회적 약자가 죽었다면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되려 엘리트가 작정하고 사회가 무관심한 대상을 죽이려 든다면 사회적 약자는 방어 할 도리도 없고 억울함을 풀 방법도 없을거란 것이다. 이게 서브컬쳐라면 명탐정 코난이나 김전일이 있어야 할 상황이다. 그 정도로 지능범의 살인이란 무서운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걸 조커에 빗대며 최근의 조커2에 실망해서는 엘리트의 살인을 올려치고 영화 조커의 행위를 내려치는데 이거는 정말 뭔 생각을 하고 살길래 그런 판단을 하는지 이해조차 되지가 않는다.


애초에 조커는 고담시의 빌런이자 범죄자다. Dc코믹스 기준으로 걔가 하는건 그냥 정신병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 뿐이다. 영화는 내가 아직 조커2를 안 봤지만 조커1은 걍 아무것도 아니다. 총을 가졌기에 공격 받는 상황에서 살인을 했을 뿐이고 그를 둘러싼 상황에서 악화되는 문제들로 인해 점점 무너져 내려간것 뿐이다. 이게 다수에게 불리한 조항을 적용하려는 거대한 이익집단을 향한 공격도 아닌데 왜 이걸 동일시하려는지 알수가 없다. 오히려 조커의 아서 플렉은 총이 없었으면 공격 당해서 죽거나 불구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조커의 살인은 치밀한 계획 살인이 아닌 우발적 살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ceo암살을 조커와 비교하는 것을 보며 정말이지 일방적인 분노 그리고 우상화가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하게 하는구나 라는 생각만 든다. 일방적으로 조커를 우상화 했다가 조커2에 실망해서는 분노를 쏟아낸다. 엘리트의 살인만큼 무서운 것은 대중들의 비정상적인 관점이다. 불필요하게 애정을 쏟고 과도하게 분노한다. 엘리트 암살범도 지금은 영웅이지만 언제 또 조커 취급을 받을지는 알수가 없다. 오히려 암살범을 우상화 하며 그와 동일한 형태를 취하려 한 상황에서 영화 조커의 상황과 유사함을 더 신경쓰고 걱정 해야 할 일이다. 미국은 폭동이 일어나면 온갖 곳이 불똥이 튀니까. 엘리트의 암살은 목표 대상에만 영향을 그쳤지만 엘리트가 아닌 교육받지 않은 이들의 광기나 폭주, 복수는 어디에 튈지를 모르는게 문제다. 나중에는 엘리트의 암살이 사회의 불안과 긴장을 부추겼다 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지. 결과론이고 편향된 시선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처럼 질서정연하고 통제되는 환경과 달리 미국은 자유를 우선시 하다보니 이렇게 된거 아닌가. 강제로 가입되지 않을 자유로 공공의료가 없었으니 높은 의료비를 부담 할 수 밖에 없었고, 보험사의 횡포에 대항하여 총기를 소지 할 자유로 암살 할 수 있었으니 이제는 자유라는 이름의 폭동만 남은거지. 늘상 그렇듯이.


미국인은 자유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 할 필요가 있다. 이게 다 그 놈의 자유 때문에 벌어진 일 아닌가. 물론 걔네들은 이게 종교처럼 뿌리 박힌 사고방식이니 못 고치겠지. 이게 바뀌려면 순수한 미국인이 아닌 이민자들에 의한 변화가 더 중요할듯.


6.스마트폰의 시스템 구조는 여러모로 좀 이해 할 수가 없다.


스마트폰, 태블릿, ios는 써 본 적이 없으니 안드로이드 기반의 기기를 두고 따지자면 이 등신같은 시스템은 왜 내가 쓰지도 않는 시스템을 강제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쓸 생각도 없고 사용 할 이유도 없는 앱들이 설치 초기부터 깔려 있거나 혹은 제멋대로 설치되기도 한다. 삼성과 구글 두 회사로부터 전송되거나 설치된 앱들은 지원이 끊겨 이제는 쓸모도 없는데 지워도 지워도 설치는 꼬박꼬박 진행된다. 자동 업데이트를 해제해도 매번 업데이트 목록에 떠 있어 업데이트 파일 캐쉬를 미리 받는 등 불필요한 작업들을 제멋대로 실행한다.


용량이 부족해서 앱을 지우고 캐시를 지우고 아무리 관리를 해도 이 쓸모도 없고 쓸일도 없고 지원도 끊겨 쓰지도 못 하는 것들이 관리 시스템에서는 삭제도 할 수 없어서 이걸 플레이스토어 메뉴에서 앱 관리로 넘어가 하나하나 삭제를 해야 하고 삼지어 삭제를 해도 제멋대로 재설치가 되서 자동 업데이트를 막아놔도 업데이트 파일은 제멋대로 다운 받는다. 이딴게 대체 뭔 시스템이란건가. 웃긴건 윈도우즈도 이제는 이 순서를 그대로 따라간다. 내가 쓰지도 않는 마이크로소프트 게이밍 시스템이 제멋대로 실행 목록에 올라가 제멋대로 켜지는 것 뿐만 아니라 이후 업데이트를 거칠수록 점점 이러한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게 경쟁을 통해서 해결 될 것 같지가 않다는 점이다. 삼성,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이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이런 식으로 사용자 시스템에 관여하는 것을 유용하다 생각하고 있기에 법적으로 처벌을 받거나 제약을 받지 않는 이상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 행위를 멈출리가 없다.


그리고 이미지 캐시 용량을 왜 사용자가 설정 할 수 없는 것인지 정말이지 짜증날 따름이다. 4기가 이상을 차지하는데 문제는 그 정도의 이미지 파일을 캐시가 생길만큼 거친 적이 없다. 제멋대로 캐시 용량을 설정 해 버리고는 건드리지도 못 하게 만든다. 정말이지 이런 쓰레기 같은 시스템을 참 잘도 만드는구나 싶다.


7. 요즘은 꿈을 자주 꾼다.


한 2주전? 까지만 해도 꿈을 거의 안 꿨다. 내 생각으로는 몸의 건강 상태와 스트레스 지수가 꿈 빈도에 영향을 주는 듯 싶은데 몸이 점점 안 좋아지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늘어남에 따라 꿈 빈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일단 요즘 꾼 꿈 중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놀랐고 다시 생각하게 만든 꿈은 어린 흑인 아이를 달래는 꿈이었다.

어린 흑인 아이가 자살을 하려 해서 그걸 말려야 했는데 자살하려는 이유를 묻자 시험 점수가 나쁘게 나와서 라고 하였고 그럼 공부를 열심히 했느냐는 물음에 공부를 안 했다고 하자 내가 마음의 준비를 했어야 할거 아니냐 라며 버럭 소리를 쳤던 점이다.


나는 대부분의 꿈에서 자각 상태를 유지하는 자각몽을 꾸곤 한다. 그 꿈 역시 어느 정도는 자각몽 상태에 가까웠는데 정작 그때 나의 화내는 반응은 무의식에 가까웠다. 그러나 내가 놀라웠던 것은 내가 자각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온 무의식의 반응이 분노라는 점이었다.


나는 요새 분노가 없다. 정확히는 너무나 잦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었다 보니 반응에 필요한 요소들을 많이 잃어 버렸다.

화를 내야 하는 에너지. 이제는 없다. 화를 내 봤자 해결 되는 것도 없고 결국 나만 피곤하고 힘들기에 이제는 화를 유발하는 에너지를 끌어올리지 못 한다.

화가 나는 인식. 분노할 대상과 나의 상황, 치밀어 오르는 감정 등 모든게 이제는 없다. 감정도 사라진지 오래고, 인식은 쉽게 지워버릴 수 있으며 대상과 나의 상황은 매번 같거나 대상이 없거나 혹은 화를 내도 전혀 변화하지 않기에 이제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런데 꿈에서 나는 내가 아니고 나와 상관도 없는 흑인 소년의 자살을 막다가 화를 낸 것이 영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내 문제도 아닌데 말이다. 나에게 분노 할 에너지가 남아 있었나? 그것도 남의 일에? 왜?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고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꿈에서 깼다.


이게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던 처음 날의 꾼 꿈이었고 그 이후로도 꿈은 지속적으로 꾼다. 그러나 꿈 속의 상황은 매번 많이 다른데 하나같이 다 좀 이상한 것들 뿐이다. 어디 달동네 같은 곳에서 비가 오고 추운데 종이박스 하나로 노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요양원에 있어야 할 할머니가 같이 있는 와중에 도랑에 있는 고양이를 빗속에서 구하려고 내려간다거나,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같이 있거나 하는 등 좀 해괴한 상황들이 많다. 원래 꿈이란게 다 해괴한 것들 뿐이고 해괴하기에 기억에 남는 것 뿐이지만.


다만 어느 정도는 추측을 하는 점이 있긴 하는것이 바로 첫 꿈의 마음의 준비를 했어야지 라는 나의 반응이다.

이거는 내가 항상 죽을 생각만 하고 죽어야지 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다. 내가 더 살아갈 의지가 없기에 언제 죽어도 좋고 되도록 그냥 자다가 바로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걸 마음의 준비로 인식하고 있고 가급적 다른 사람들 역시 이런 생각을 갖길 바란다. 언젠가 자신은 눈깜짝 할 사이에 죽을수가 있으니 죽을수도 있다 라는 현실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말이다.


그래서 이게 나에 대한 예지몽 같은거라면 얼추 맞지 않나 싶다. 몸이 나빠지고 나서 꿈을 꾸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이건 경고나 혹은 현 상황에 대한 반응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나는 이에 대한 마음의 준비. 내 몸이 뭔가 잘못되었을수 있다는 현실을 마주할 준비를 경고하는 것일거라 판단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나는 곰팡이 핀 쌀로 밥을 먹었던 상황이 있으니 몸에 안 좋은 영향이 있을수도 있고 당뇨병 약도 제때 먹지를 못 했으니 뭔가 안 좋은 점이 누적될수도 있다. 몸이나 주변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혹 죽음의 냄새, 몸에서 이상반응의 냄새일수도 있는 일이고. 애초에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니 어떻게 보면 정신적으로 서서히 무너지는것이 육체에 반영되고 있을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내 주변의 일의 예지몽일수도 있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좀 강하다. 주변 일을 고려하기에는 그러고 싶은 에너지가 없다. 그냥 나 하루 버티는 것도 힘들다.


이 이야기를 굳이 적는 것은 내가 기억력이 안 좋으니 잊어버린다면 이후 이 꿈들이 어떤 연관성이 있었을 것을 놓치는 것은 여러모로 안타까울 듯 싶어 적는 것 뿐이다. 내 안의 문제와 꿈과 몸과 정신의 연관관계를 분석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