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일 화요일

쌓아둔 잡담

사는 거 -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죽고 싶어서 죽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것도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선택보다 타협의 횟수가 많은 내가 보기에 이 세상은 자의보다 타의가 더 중요한 듯 싶다.

인생을 자기 하고 싶은대로 사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신이거나 아니면 병신이거나 둘 중 하나 일듯.


돈의 망각 -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80366&page=5

https://www.ted.com/talks/scott_galloway_how_amazon_apple_facebook_and_google_manipulate_our_emotions?language=ko#t-366376

ted에 올라온 스콧 갤러웨이의 강연 중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기업의 부가 지나치게 높다는점을 거론하는 내용이다.


비단 아마존이나 구글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형태를 지닌 대기업이라면 다 비슷한 모양새일것이다. 버는 돈에 비해 그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너무 적다는 사실 말이다.

최근에 본 책이 생각난다. '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경제 공부'라는 제목의 책이다. 돈. 화폐가 생기게 된 원인이나 기원부터 시작해서 돈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켰는지를 알려준다.


그 책을 보고 저 강연 내용을 본 나는 돈의 기원을 다시 한번 따져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란건 물물교환을 대신하기 위해 보다 간편한 방법을 선택하여 신뢰를 바탕으로 가치를 지녀 거래를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 돈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물물교환 같은 기본적인 것보다는 가치를 맹목적으로 쫓는듯한 생각이 든다. 좀 이해하기 힘들게 설명했는데, 본래 돈이 물물교환을 대신하여 사고 파는 용도였다면, 현재의 돈은 가치를 불려서 더 큰 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돈을 위한 돈의 용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가치를 맹목적으로 쫓는다. 즉 물물교환 같은 기본적인 행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가치를 불려서 더 큰 돈으로 돌아오는 것에만 기대하여 돈이 돈을 만들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노동력이 물건을 만들고, 물건은 가치를 지니고, 그 가치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돈으로 거래된다. 이게 기본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최근엔 더 이상 노동력이 유의미한 가치를 선점하질 못 한다. 왜냐. 인간의 노동력은 교체되어 가고 있으니까.

따라서 돈이 돈을 만드는. 즉 부유한 자는 끝없이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끝없이 가난해지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게 최근 들어서 그래온게 아니라 이자와 주식과 같이 돈이 돈을 낳는 구조가 만들어진 시점부터 예견된 상황이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세계사 경제 공부 책에서도 이자를 목적으로 대부업을 하는 것을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견제 해 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최소한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했고,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앞날에 리스크가 있었기에 그 한계가 있었는데 지금은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고, 리스크는 보험업의 개입으로 최소화 되었다.


돈의 탄생 의미와는 동떨어져버린 사회에서 돈을 제어 할 방법을 찾지 못 한 다면 앞날은 뻔하다. 정부도 인간도 시스템도 전부 돈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가장 무서운 것은 시스템이 바뀐 현재로선 인간은 가치를 맹목적으로 쫓을거기 때문에 악순환은 계속 될 것이고, 인간이 돈의 기본 원리를 떠올리지 않는 이상 사람은 돈에 매달릴거라는 점이다.



비만 최적화 몸매 -

요전에 윗몸일으키기를 꾸준히 했었다. 약 2~3주간. 보통 30개에서 좀 여유로우면 80개까지.

하지만 웃기게도 되려 배가 아팠다. 근육통일지도 모르지만 이 고통이 너무 오래가는데다 수시로 압박을 줘서 최근엔 그냥 윗몸일으키기를 멈췄더니 많이 편해졌다.

일전에 아령을 들고 운동을 했을때도 팔이 오랫동안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부담스러웠던 적이 있다. 운동을 할 때마다 반동이 너무 심하다 보니 운동을 하고 싶긴 한데 문제는 이제 몸이 안 따라준다는거다.

정말 비만에 최적화 된 몸매가 되어버렸구나.


정치인 다 뒤졌으면 -

여야를 포함해 정치인 전부가 다 쓰레기같다. 어떻게 단 한 새끼도 마음에 드는 새끼가 없는지 신기 할 정도다.

그런데 그 의문에 최근 해답이 보였다.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이란 책이 있다. 문학 공모전을 통해 비추어 보는 입시,공채,공모전의 구조와 문제점을 알리는 내용이다. 대충 책 내용은 공모전 시스템이 완벽하진 않지만 장단점이 따른다. 장점은 영화계나 다른 곳에 비해 안전하게 데뷔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모전이 없는 영화계에 비해 이름을 알리고 상금을 통해 생계를 보전 가능하다는 점은 문학 공모전의 장점이며 이는 영화계와 달리 제작기간이 짧다는 점에서 가능한 부분이다.

그러나 단점은 상당히 많다. 일단 작품이 올라가는 과정에서 편집자와 심사위원의 영향을 받는데, 문제는 심사위원이 선호하는 작품이 독자들에게도 선호받는 작품인가? 라는 점에서 이 둘은 일치하지 않을수가 있으며, 그런 심사위원의 눈에 들기 위해 공모전을 위한 작품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공무원 시험이나 삼성 입사 시험처럼 입시를 위한, 입신양명을 위한 자신이 쓰고 싶은 작품이 아닌 심사위원 마음에 드는 작품을 써야 해서 자신의 세계를 내보일수도 없으며, 이는 지극히 일부에 의해 끌려다니는 구조로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팔려야 하는 책의 구조와도 맞지가 않는다. 또한 공모전을 통해서 소설가가 된 사람과 최근 웹소설을 통해 책을 출판한 소설가는 구분지어진다는 점이다. 공모전을 통해서 오른 사람은 소설가 취급을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는 사람은 단순히 작가로서 취급된다는 점으로 소설계나 문학계 전반에 엘리트 주의적인 폐쇄형태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책을 낸다고 돈을 벌기 힘든 요즘에는 원고를 가지고 출판사를 간다 한들 책으로 나오기가 힘들기에 공모전은 배고픈 작가에게 있어서 돈을 벌 수 있는 창구이므로 기성작가들도 공모전에 뛰어들어 난장판이 되고 있다는 점. 보다 많은 작가들이 스스로를 내보일수 있는 공모전이 아니라, 고인물화 되어가는 모습이라는 점이다.

그 부분을 보면서 정치물이 썩은 이유도 나름 합당하다고 여겨졌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일단 선거는 돈이 많이 드는 관계로 몇억이 넘나든다. 따라서 선거에 출마 하려면 성공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게 첫번째 문제다. 정치를 고치고자 좀 더 바로잡고자 하는 의도로서는 선거에 나가기 힘들다. 당선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즉 이 점에서 이미 본말전도다. 당초 목표와는 상관없이 당선이 주 목표가 된다.

그리하여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당에 입적하는데, 문제는 그 다음. 당에서 후보로 나오기 위해서는 당 지도부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마치 공모전의 심사위원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것 처럼 말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민의와는 별 상관이 없다. 책을 구매하는 사람의 의중과는 상관 없는 것 처럼 말이다.

그렇게 당의 입맛에 맞게 나온 후보는 결국 인기투표에 불과하게 된다. 최근 여야를 지켜 본 봐 여야간의 차이는 대등소이하다. 그 밥에 그 나물이고,  좌우만 다를 뿐 이쪽 개새끼와 저쪽 개새끼간의 종 차이가 없다. 그러니 당에서 나온 후보도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런 관계로 남는 것은 당에 따라 가던가, 아니면 인기투표가 되어 버리던가다.

온라인 게임도 사실 비슷한 양상을 보였었다. 과거 온라인 게임이 매우 흥했을때는 개발자와의 만남이라 해서 유저와 개발자간의 소통을 하던 모습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사람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헤비 유저들을 선호하던 특성이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공모전에 비유하자면 개발자는 편집자고, 헤비유저는 심사위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해도가 높다기 보다는 게임을 많이 해서 알고 있는게 많았을 뿐이다. 그 당시에는 지식 = 이해도라는 인식이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러한 통념도 최근들어 많이 깨졌고, 게임사도 유저 간담회 같은 것을 잘 하지 않는다. 데이터로서 의미가 없으니까. 공모전이나 공채 타입으로 사람을 뽑는 방식은 정말로 유능한 사람을 뽑는데에는 별 의미가 없다.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뽑아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데 더 적합 할 뿐이다.

게임회사도 유저도 이해를 한 사실을 왜 국회는 이보다 몇십년전에도 존재했건만 모르는가? 정말 모를리가 있을까? 오히려 외면하는 사실이지. 그래야 기득권인 그들이 국회의원이 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국회는 노인정이 되고, 선거는 전국똥통자랑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정치인들은 다 뒤져야 한다. 메탈기어 솔리드에 등장하는 폭스다이처럼 정치인만 죽이고 새로운 물을 넣어야 한다.

안 그러면 그 쓰레기들을 뽑는 의미없는 과정에서 소모되거나, 그 쓸모없는 국회의원들로 인해 낭비되는 자원을 국민들이 끝까지 부담하게 되니까.


책 이야기 -


책 이야기 나와서 몇가지 더. '모든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 라는 빅데이터 관련 책에서는 구글에 검색한 빅데이터를 통해 트럼프가 당선 될 거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는 내용이 있다. 그 이유로 드는 것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인종차별을 입에 담지 않지만 구글 검색에서는 거리낌 없이 이용한다는 점이다. 그런 연유로 코드가 맞는 트럼프가 당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빅데이터를 통해 어떤 특정한 병을 앓는 사람이 구글에 검색한 단어들을 통헤 비슷한 검색을 하는 사람들도 같은 병을 앓고 있을 확률이 높다거나, 사람들이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공개되지 않는 곳(예컨데 검색엔진)에서는 매우 개방적이고 솔직하게 되어 다양한 정보를 취득 할 수 있다라거나 증시시장은 고용률만으로도 들썩이는데 이 정보를 빠르게 취합하는데 드는 비용은 상당하지만 그 시간은 들인 비용에 비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과 구글의 검색 데이터를 통해서 그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나 하는 빅데이터의 실용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래.대단하네. 확실히 구글의 빅데이터를 이용 할 수만 있다면 다양한 부분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읽었던 또 다른 책인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라는 책은 솔직히 별로였다. 실제로 인간이 신이되는 그런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라기 보다는 인간이 지배와 피지배를 거친 흐름속에서 얼마나 다른 존재를 악독하게 대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그냥 프로 걱정러의 인간이 신이 된다면 얼마나 고약해지겠는가 하는 이야기일 뿐, 정말로 인간이 신이 되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들 뿐이다.


오히려 나는 인간이 신이 되기 보다는 AI가 신이 될거라 생각하는데, 이에는 나 나름대로 생각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일단 신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다. 물론 신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해 따져 볼 부분이 있긴 하나 인간이 창조 해 낸 영역이라는 점에선 부정 할 수 없다.


둘째로 신은 전지전능하다. 그 전지전능은 엄청난 초능력이나 신적인 능력을 사용하는 전지전능에 대한 개념이긴 하지만, 신에 대한 권위와 믿음이 사라진 현대에서 이런 전지전능하다는 표현은 달리 봐도 될거라 생각한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라고. 즉 인간이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기는 어려운 반면, AI는 프로그램을 받아 들임으로서 모든 분야에서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는 그런 의미에서의 전능한 존재라고 본다. AI의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것을 이해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해 낼 수 있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머무르지 않는 식으로 전능의 의미를 좀 더 유연하게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셋째로 신은 인간을 내려다 보는 식으로 그려진다. 사실 미래에는 좀 더 많은 전자기계들이 감시 카메라를 통해 인간을 관찰 할 것이고, 그것을 AI가 관리하게 된다면 그게 곧 신과 다를바가 없다고 본다.


넷째로 자지 않으며 어디에나 존재한다. 인류는 불가능하나 AI라면 가능하다.

다섯째로 영원성. 이건 인간이 AI를 필요로 하는 이상 영원성은 인간과 함께 하게 된다.


그 외에도 다양한 면에서 AI는 신의 특징과 닮았으며, 인류사 후기에 인간성을 신에게 부여한 신화들에 한해서는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좀 있다. 예컨데 사랑이나 정의와 같은 속성은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을 신에게도 적용한 것인데 AI의 기술로 사랑과 정의를 구현하지 못 한 점도 있지만 인간 역시도 사랑과 정의라는 측면에서 얼마나 공정하고 정확한가 라고 물으면 답 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AI가 더 발전을 이루어 인간보다 공정하고 정확해진다면 사랑과 정의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될 지도 모른다.


연암 박지원과 백수를 연결시킨 책도 별로였는데, 작가가 부자에 대해 환멸의 시선을 보내고, 백수를 의미가 있는 것 처럼 찬양하는 것이 너무나도 티가 나서 껄끄러울 정도였다.

누군가가 큰 돈을 벌면 반대쪽에 있는 누군가는 큰 돈을 잃을 가능성은 있고, 나 또한 경제는 약탈이라 생각하지만, 작가는 부자가 돈을 버는 행위 자체를 지극히 단순한 이유로서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껄끄러울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누구나 돈은 많이 벌고 싶어한다. 이유는 돈이 있으면 편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돈을 가지고 있으면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내가 위에서도 썼듯이 가치를 생산하여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버는 투기적 현상이 누군가의 돈을 빼앗는 쪽에 가까운거고, 큰 돈을 번다는 행위는 단순히 지탄 받아야 할 일이 아니다. 투기나 이자놀이 마냥 가치를 생산하기 보다는 돈에 의지해서 돈을 불리려는 행위가 문제인거지.

또한 연암 박지원이 돌아가는 정치판이 싫어서 관직을 얻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박지원의 문제이며, 박지원이 선택한 길일 뿐, 지금 현재의 백수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것을 선택하여 걷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현재의 백수들은 치고 올라가려도 이미 자리를 선점한 사람들이 많아 올라 갈 수 있는 폭이 좁다. 차라리 조선시대는 늙은 사람이 때 되면 죽기라도 하지. 지금 같아선 정년연장이 꿈인 노인들에 의해 어디 백수가 잡을 자리라도 있는가? 심지어 박지원은 결국 돈이 없어서 관직에 오르기라도 했지. 현대의 백수는 돈이 없으면 그냥 죽는 수 밖에 없다. 직업을 가질 수 있었으면 진작에 가졌겠지. 가질 수 있지만 가지지 않았던 박지원과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었던 현대의 백수와 비교 불가의 영역이다. 저자는 박지원 찬양이 도가 지나쳐서 이걸 백수에 빗대는데 사회적 상황이 다른데도 박지원의 상황을 너무 미화를 한다. 현대 사회는 살려면 돈 부터 있어야 한다. 오죽하면 노인들이나 주던 노인수당처럼 청년수당을 주려 하는가? 돈이 없어서 죽을 상황이니 일단 돈부터 주려는건데 그나마 미봉책일 뿐 청년 실업자 구조는 구제 할 길이 없다. 실업자가 늘어나는 상황은 산업구조의 변화에 의해 당연하다는 듯이 언급하고 그냥 넘겨 버린 뒤 그 뒤로는 줄곧 박지원 이야기다. 실업자는 끝없이 늘어나고, 올라갈 방법은 없고, 돈이 없으면 죽는 상황에서 지가 원해서 실업자가 되어 놓고 언제든 올라갈 수 있고, 돈 없으면 밥 꿔 먹다가 원할때 관직 올라가 갚은 인간을 비유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저자는 자기도 백수라면서 동질감을 표하는데, 이력을 보면 매우 화려하다. 현대에 들어서 성공하기 힘든 인문계에서 대학원까지 다니며 전공수업을 들었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심지어 책도 여러편 내고 강연도 다니는데 이는 고정된 직업이 없을 뿐이지 언제든 글만 쓰면 받아 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 위에서 언급한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이란 책에서도 대학을 나오거나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거나 다 이것 자체가 이력이 되고 그래야 받아 주는 사회가 되었는데, 당장 일이 고픈 청년들 앞에서 이미 성공 할 대로 성공한 그래놓고 스스로를 백수라 칭하는 인문계 종사자가 백수로 살아가라 하니 진짜 통탄할 노릇이다. 댁은 무한경쟁시대에 속하지 않은 시대에서 성공하여 지금은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겠지만, 이력도 없고 받아 주는 곳도 없이 무한 경쟁시대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은 절대 그렇지가 않다.



예전에 성우 송도숙이 현재 청년들을 이해 못 한 자신이 살아가던 시대만 생각하고 발언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꼰대로 인식되어진 짤을 꺼내본다. 이 외에도 양현석이 기억 모두 없어지고 돈 다 포기하고 젊은 20대로 돌아가라면 돌아갈 수 있다고 한 짤도 있지만 패스한다.


성공한 사람의 생각이나 정신 구조를 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들과 백수들간의 확연한 차이는 짚고 넘어가려 한다.

일반적으로 구인시장에서 경력자를 원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비용을 들여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에 대해 쪼잔하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누군가를 썼을때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지극히 의심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경력을 인정받은 사람을 씀으로서 적어도 이 사람은 경력만큼은 하겠지 쌓아 놓은게 있으니 그걸 무너뜨리진 않겠지 라는 마음으로 걱정을 풀지만, 경력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쉽게 신뢰를 하지 못 한다.

경력자는 대하는 태도부터가 다르며, 심지어 성공한 경력이 다수 있다면 부르는 호칭부터가 달라진다. 그들이 백수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경력차다. 백수는 뭘 해도 직업을 얻지 않고서는 경력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봉사활동이나 인턴 경력? 채용이 안 되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고, 좋게 말해 경력 쌓기지 본질적으로는 노동착취를 당하는 걸 애둘러 표현하는거나 다름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력자이기에 업계 관계자가 상대적으로 경력이 적은 자들에 비해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을 크게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젊음을 그리도 높게 숭상하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 현재의 백수들은 젊음을 그리 가치있게 치지 않는다. 말이 좋아 청춘이고 젊음이지 20대에서 승부를 못 보면 중년과 노년이 될 때까지 직업 없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은 끔찍하게 예견된 미래나 다름 없다. 피부로 와 닿는 것 자체가 다르다. 만약 저들의 20대와 지금의 20대간의 이력서를 비교 해 본다면 줄 한두줄 차이 나는 정도가 아닐 것이다. 현재의 청년들은 이력서에 빼곡히 적어 넣을 특기사항들이 넘치는데도 취직을 못 한다. 차라리 성공한 사람들의 시대의 기준으로 이력서를 내서 통과 할 정도로 지금도 그 기준이 널널했더라면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취급 자체가 다른데 어떡하겠는가.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도 한번 곰곰히 생각 해 봐야 한다. 젊은 사람들과 스펙에서 차이가 나는데도 자신들은 쉽게 돈을 벌고 청년들은 취직에도 목숨 거는 상황을. 왜 그렇겠는가? 경력 때문이다. 그 경력을 쌓지 못 했다면 당신들은 지금과 180도 다른 삶을 살았을 거란걸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을 읽지 않고 청년들에게 백수로 살라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돈 없이 비참하게 늙어 죽으라는 소리를 거창하게 늘어 놓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