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19일 토요일

애니메이션 나는 백만명의 목숨 위에 서 있다 1,2기 감상

나쁘진 않았다. 좋다고 하기에는 좀 애매했고.

최근 일본의 서브컬쳐의 흐름들이 너무 대놓고 질적하락이 이어지다 보니 도저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 뭐라도 좀 봐야 하나 싶어서 고른게 아주 꽝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꽝만 아니지 이것도 좀 그렇긴 하다.

나는 백만명의 목숨 위에 있다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지구에 사는 주인공이 이세계로 이동하여 퀘스트를 달성하지 않으면 죽는 데스게임에 강제로 끌려가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주인공이 속해 있는 파티의 세번째 참가자이며 퀘스트는 참가한 파티 전원의 공통 목표가 된다.

참가자들은 rpg게임처럼 직업을 랜덤으로 배분받으며 이세계에서는 용사로 간주된다. 레벨10을 달성하면 룰렛을 돌려 추가 직업을 얻을 수 있고 참여자는 전원이 사망하는 것만 아니라면 정해진 시간 뒤에 부활하지만 신체의 손상이 회복될수 없거나 부활해도 다시 즉사하는 상황이라면 부활하지 못 한다.

일견 데스게임으로 보여지는 이 작품은 초기의 도입만 그럴뿐 1기 후반부터 노선을 달리한다. 데스게임의 룰은 변하지 않지만 이 데스게임을 만들고 참가자들을 강제로 참여시킨 존재의 의도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나는 백만명의 목숨 위에 서 있다 라는 타이틀의 의미가 드러난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바와 데스게임과 동료 관계가 매치가 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주인공의 사상과 이세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접점을 통해 어느 정도 전해지긴 한다. 주인공은 사람의 목숨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며 자기 자신은 낮게 취급한다. 이 목숨의 우선순위를 두어 행동하는 성격 탓에 남들은 쉽게 하질 못 하는 선택도 가능하여 파티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입장이다. 하지만 필요한 일을 해도 욕먹고 비난받는 위치가 될 뿐더러 정작 해야 할 일을 미루고 결정하지 못 한 다른 사람들의 문제는 인간다움으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기에 이야기는 상당히 납득이 가지 않는 형태로 흘러간다. 더군다나 2기에 들어서서 여섯번째 플레이어가 들어오는데 이 여섯번째 플레이어는 주인공 혼자서 다 처리해야 했던 일을 나누어 주기에 주인공과 여섯번째 플레이어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그저 뭐하는 한심한 놈들인지 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작가가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이 활약하는 구조를 위해 주인공이 머리를 쓰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는 이야기 구조로는 필연적이라고 볼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보상구조가 빈약하다. 주인공은 행위에 대한 보답을 소소하게나마 받아야 하건만 그렇지 못 하고 있다. 혼자 힘들게 밤낮으로 굴러도 동료와는 의견 마찰을 빚을 뿐이다. 그것도 노력도 성장의 의지도 없는 것들에게 말이다.

게다가 작위적인 형태가 너무 심하게 나는 전개 역시 그리 매끄럽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주인공이 노력하는 것에 비해 클래스는 항상 엉터리로 배정이 된다. 다른 동료들보다 더 많이 클래스 체인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클래스의 강화가 이루어지는 동료들과는 달리 주인공의 클래스는 꾸준히 서브 클래스 수준에 머무른다. 

일반적으로는 동료들처럼 클래스가 강화되어가며 성장하는 법인데 주인공만 바닥에서 머무르고 있다. 아마도 봉인된 엑조디아 파츠 모으기처럼 클래스를 모아 히든 클래스 용사라도 만들어 주려는 모양인가 본데 그러기엔 주인공이 너무 활약하고 있는터라 용사가 되든 뭐가 되든 별 차이를 못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작위적인 흐름에 의해 이야기의 주제인 주인공의 마음의 변화 역시 단지 작가의 의도대로 흘러갈 뿐이라고 느껴진다. 동료와의 관계도 결국 작가에 의해 흘러가는 것이고 그렇다보니 이런 작위적인 흐름 속에서 아무리 메세지성을 담아 봐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가 나쁘진 않은데 동시에 좋지도 않다. 메세지를 담으려는 노력은 이해하지만 그 방법이 작가의 의도대로 흘러가는게 너무나도 눈에 띄는터라 주인공과 이야기 사이에서 거리감이 생기고 마치 극장에서 좌석에 앉아 관망하는 듯한 외부자의 시선에 머무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