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신 김치

 집에 신 김치가 있다.

셔서 안 먹으니 더욱 시어진 신 김치다.


어쨌거나 먹던지 버리던지 선택지는 둘 밖에 없다. 그리고 음식을 버리지 않게끔 습관이 든 나는 먹기로 결정하고 처리방식을 고민한다.


신 김치를 처리하는 방식은 내가 알고 있는 한 두가지 뿐이다. 아니 세가진가.


첫째는 볶는다. 둘째는 끓인다. 셋째는 곁들인다.


그런데 이 김치는 곁들이는 수준으로는 커버가 불가능한 신 김치라 곁들이는 것은 패스. 끓이다도 마찬가지로 신 맛이 너무 강해 국물을 마실수가 없다. 따라서 끓이다도 패스.


늘 그렇듯이 한가지 방법 밖에 안 남는데 볶는다로 가면 내 방식은 다음과 같다.


설탕과 설탕이 아닌 다른 조미료를 섞어 맛을 중화시킨다. 이전까지는 기름과 다시다로 커버쳤는데 다시다는 맛이 짜게 느껴지는게 문제라 이제는 좀 탈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나는 조미료나 소스를 충동구매하는 성격이 있고 그렇게 안 먹고 남은 소스로 눈을 돌리니 집에 있는건


갈비양념 소스. 마라 소스. 솔티카라멜 소스. 참소스. 카레 케찹, 카레 마요네즈, 트러플 마요네즈. 와사비가 있다.


일단 와사비는 아니다. 내가 아무리 요리를 망치는 요리괴인이어도 와사비를 김치와 볶는다는게 아니라는건 안다.


갈비양념을 쓸 생각은 없다. 갈비양념은 좀 더 가치있는 일에 써야만 한다.


솔티 카라멜 소스는 설탕 대용인듯 싶지만 지금 생각 해 보면 왜 이딴걸 샀는지 후회일 뿐이다.


마라소스는 매운맛을 높여줄텐데 김치가 이미 매운맛인데 의미있나? 싶다.


참소스도 아니다. 카레케찹도 말이 안 되지. 케찹이 신맛인데 신 김치에 넣어서 무엇하리.


남은건 카레 마요랑 트러플 마요네즈인데 트러플 마요네즈는 맛이 괜찮아서 이딴 일에 낭비하고 싶진 않다. 결국 카레마요다.


혹시나 싶어서 일단 마라소스를 같이 꺼낸다.


신김치를 조각내어 프라이팬에 담은 뒤 고심한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과 요리를 망친 경험들이 누적되어 레벨업이 된 만큼 무작정 요리를 시작하진 않게 되었다.


일단 작은 접시에 신김치 몇조각을 담아 카레 마요를 뿌려 먹는다.

.....괜찮네?

카레마요만이 아니라 트러플 마요랑도 괜찮다. 여기서 괜찮다는 소리는 그저 신맛이 잘 안 느껴진다는 소리다.


지금껏 마요네즈 활용법으로 먹기 힘든 매운 맛을 중화시킬때 마요네즈를 비벼 먹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먹고 나서 뱃속이 요동칠 지언정 먹는 동안은 고통스럽지 않다는 지식에 이번 경험이 추가된다.


마요네즈는 빌어먹을 정도로 신맛도 못 느끼게 한다는 것.


마요네즈의 기름과 난황액이 혀에 막을 씌워 맛을 느낄 것이 닿지 않게 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논리대로라면 달고 짠것도 못 느낄것 같은데 그거는 성인병과 관계가 깊으니 설령 되더라도 안 하는게 나을것 같다.


두번째 후보인 마라소스. 매운맛이 신 맛을 좀 덜 자극적으로 느끼게 한다. 어차피 매운맛이 자극적이라 신맛은 고통면에서 덜하게 느껴진다.


둘의 조합이 그럭저럭 괜찮음을 깨닫고 다음 단계로 간다. 작은 프라이팬에 조금 담아 사전 볶기 시전.


카레마요+신 김치 조금을 볶은건 괜찮았다. 진짜 생각보다 괜찮았고 이 때문에 마라소스는 나중으로 미루고 카레 마요로 조리를 속행하려 했지만 이것이 나의 실수라는 것은 요리 중간에 깨닫게 된다.



일단 적은 양으로 볶을때는 단시간에 볶을 수 있어서 대체로는 온전하게 마무리 된다.


문제는 많은양. 빌어먹을 정도로 많은 양이 문제다.


조리 시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카레마요에서 마요네즈와 식초와 난황액이 분리가 되는 시간도 늘어난다.

열을 많이 받은 만큼 신 김치에서 물이 나오고 프라이팬은 물이 많아지고 물을 날려버리기 위해 오래 조리하면서 자연스레 마요네즈는 분리되고 기름은 가라앉고 난황액은 사라지고 식초가 들러붙는다.


신 김치가 결국 구제할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나마 카레 마요라서 카레맛과 난황액 영향과 기름으로 죽을 정도로 시진 않다. 하지만 과연 이게 내가 먹고자 했던건가 싶은 맛인지... 만들었으니 어쩔수 없이 먹긴 하지만 무지하게 괴롭다.


이걸 극복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남은 트러플 마요...... 미쳤나.


마요네즈로 볶아 놓고 그걸 또 밥이랑 신김치랑 마요네즈랑 비벼먹는다. 그런데 그러지 않으면 셔서 못 먹고, 마요네즈를 비벼 놓으니 신맛이 안 느껴진다. 그저 신맛이 잘 안 느껴지는 것 뿐이다. 신맛은 분명 존재한다. 그저 눈가리고 아융 할 뿐이지.


이 일로 얻은 교훈은

요리할 땐 양을 적게 조리하자.

마요네즈를 뿌리는 음식은 재료의 참맛을 아예 모르는 것과 같다.



일단 신김치는 반포기 두개가 더 남아 있다. 다음에는 마라 소스를 쓸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나 마라소스가 배에 부담을 줘서 안 쓰고 있었지.


그럼 방법이 없네.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