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2일 일요일

그냥 좀 답답해서 쓰는 글

 https://pgr21.com/freedom/88868

 

똥 이야기 말고는 그나마 중도적인 의견을 볼 수 있는 사이트라고 여긴 곳에서 좀 충격적인 반응들을 봐서 한탄 겸 글을 쓴다.

 

일단 왜 내가 한탄스러워하는지 답답해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난 출생의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누군지 모른다.


전혀 모른다. 심지어 가족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알려주지도 않았다.


내가 내 이름을 인지하고 나의 자아를 깨달은 아주 어릴적 그 순간부터 나에겐 어머니가 곁에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 자체는 오랫동안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없는 상태로 살아 온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었기에 어머니가 없다는 것을 문제로 인식한다는 것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던 것을 인지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허나 내가 12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살피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를 보살피는 관계가 되었을 때 둘 사이의 균형이 미묘해질 때 쯤이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나를 보살피는 것이 힘들어질땐 할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 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살피는 것이 힘들어질땐 왜 나만 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 라며 나에게 없던 어머니라는 기댈 수 있는 존재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 균형은 오랜 시간을 거쳐 완벽하게 기울어졌고 나는 허리를 다쳐 일어나지 못 해 기저귀를 차고 바닥에 똥을 싸야 하던 할아버지를 몇년전 가장 추웠던 겨울에 떠나 보낸 뒤 지금은 치매로 모두를 힘들게 하는 할머니를 보살피면서 가장 힘들때마다 종종 생각하곤 한다. 나에게 어머니가 있었더라면 좀 달랐을까 하고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소년 가장이라거나 편부모라던가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간의 인식이야 좀 불쌍하네 라며 가여워 할 뿐이지 그걸로 차별을 받거나 문제가 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나를 힘들게 했던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내 인생을 망가뜨려 온 할머니와 그것을 제지 할 수 있는 정상인이 없는 불안정한 가정 형태 뿐이었다. 세간의 인식 때문에 힘든게 아닌 비정상적인 가정의 형태에서 정상적인 반응을 기대 할 수 없는 가족 구성원이 가장 나를 힘들게 했다.


그것을 반증하듯 나는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인지하며 가장 그리워 할 때가 바로 자살충동이 가장 강하게 들 때 였다. 죽고 싶을 때 마다 어머니가 있었더라면 좀 달랐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코 타인이 힘들게 해서가 아니다. 치매 걸린 할머니가 나를 힘들게 하며 나를 괴롭힐 때 가장 그리워 하곤 한다. 타인은 나의 일상을 지배하지 못 하지만 치매걸린 할머니는 지배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에 와서 어머니를 찾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제와서, 이 나이가 되서, 어머니를 찾아 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것이 날 대체 어떻게 변화시키겠는가.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응어리 진 답답함은 항상 외치곤 한다. 대체 난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라고 말이다.


그래서 한탄스럽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저 글의 리플들은 마치 시험관 아이는 자유로움의 결정체이며 무슨 자기주도적인 삶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그 리플들을 보며 나는 뒷통수를 맞은듯 정신이 멍해지며 어이가 없게 느껴졌다. 그 말, 아이 앞에서도 할 수 있겠냐고 묻고 싶다.


편부모 가정의 문제를 무슨 사회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거나 전혀 차별 받지 않아야 한다거나 라며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돌리며 심지어 일반적인 부모 형태에서 몹쓸 부모들도 있다며 소수의 케이스를 거론하며 일반화를 하려 하고 편부모 가정 형태를 두둔하려 하는데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편부모 가정은 그 자체로 문제를 안고 있다. 사회적 인식이 아니라 가정 형태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부모를 가진 가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그 부모인 인간의 문제이지만 편부모 가정은 인간의 문제 이전에 구조의 문제다. 빠져 있는 부분을 채우려고 해도 채우기 어렵기 때문에 부족한 만큼 결여되기 마련이다. 내가 앞서 말했듯이 나는 사회의 인식 때문에 힘들어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속해 있는 가정의 문제 때문에 힘들어 했을 뿐이지. 그리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고 그걸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했기에 그만큼 빠진 부분을 그리워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 글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느낀다. 정상적인 가정 속에서 자라난 사람은 정상적이지 않은 가정의 괴로움을 절대 이해하지 못 한다고.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게 아이에게 어떤 응어리를 지게 할지도 전혀 예상을 하지 못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기주도적? 자유? 잘들 해 봐라. 하지만 과연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부모의 결정을 이해 할 수 있을까? 아이에겐 그 어떠한 자유와 선택권도 없었는데? 결정에 위선적인 껍데기를 씌우며 포장하고 찬양하려 하지만 결국 그건 독단이다. 아이에게 부모라고 하는 선택권을 배제한 독단. 아무리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고 장담해도 인간의 일이란건 결코 100% 확신 할 수 없다. 둘 이상이 모여도 100%를 확신하기 어려운데 그 반쪽으로 100%를 확신하려 하다니 정말이지 기가 찬다. 만약 그러다 죽으면? 아이는 홀로 남게 되는거다. 아니면 친척이나 부모님의 도움을 빌려야 하는거고. 차라리 출산의 원인을 만든 남편탓 아내탓이라도 할 수 있는 환경이 낫지,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혼자 잘 키울 수 있다면서 독단으로 출산 하면 변명조차 할 수 없다. 오롯이 자신의 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큰 소리를 치며 자기가 다 책임진다고 떠드는 사람 치고 정말로 책임 지는 꼴을 본 적이 없기에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차라리 책임 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책임 질 일을 선택하지 않는 것을 더 신뢰한다.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해 보자. 내 사촌누나의 부모님은 이혼 했지만 최소한 내 사촌누나는 부모님이 누군지 또렷하게 알고 있고,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내 사촌누나와 나의 다른 점은 선택권에 있다.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서 누구를 선택 할 지 둘 다 선택 할지 둘 다 포기 할지 여전히 선택권이 남아 있다. 하지만 나에겐 없다. 나는 그 어떤 선택권도 없다. 자유도 없다.


정상적인 가정 속에서 자라난 사람은 정상적이지 않은 가정의 괴로움을 절대 이해하지 못 한다고 했는데 그 부분에서도 이야기를 더 해 보련다. 내가 공공근로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 보면서 느낀거지만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평범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는 부분에 있어서 확연하게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기준이 있다. 절대적이라고 할 순 없어도 추상적이면서 개념에 불과하지만 그 둘을 나누는 또렷한 선이 존재하며 그것을 마치 눈에 보이듯이 아른거리는 형태로서 인지를 할 수 있는데 그건 바로 재산이다. 돈, 부유함, 부족함이 없는 환경. 그리고 유유상종.


결혼이란 본래 서로 비슷한 수준의 가정이 만나 결합하기 마련인데 정상적인 가정과 정상적이지 못 한 가정의 차이를 두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관계가 깨지기 쉽고 문제가 발생하기 용이한 가정은 바로 이 금전적인 부분에서 제일 먼저 문제가 보이고, 균열을 만들어 낸다. 서로를 이해 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야 있겠지만 돈은 그 어떤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요인이다.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자기가 원해서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아이가 자라서 결혼을 고려 해 볼 나이가 되면, 결혼 상대를 찾는 과정에서 급이 나뉘어 지고 재산,가정환경 역시 고려 대상이 된다. 그리고 유유상종이란 말에 맞게 비슷한 수준에 맞출 수 밖에 없다. 편부모가 타 가정 수준의 소득 수준을 이뤄내거나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게 아니라면 결국 그 아이들의 급은 낮아지기 마련이다. 정신 차리고 나중에라도 결혼을 해서 부족한 부분을 충족하면 모를까 편부모 상태에서 언제까지고 아이를 책임 질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나는 그렇게 생각없고 책임감 없는 결정을 하는 사람이 책임을 질 수 있을거란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사유리의 결정을 비판 할 생각은 없다. 연예인이 북을 치든 장구를 치든 내 알바 아니고, 그런 일에 하나 하나 반응을 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단에 의해 생겨 날 편부모 가정을 아무 생각 없이 두둔하려는 사람들을 보자니 답답하여 글을 쓰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래. 너희들은 모르겠지. 편부모 아래에서 살아가는게 뭐가 힘든 건지를. 자신들 눈앞에선 항상 정상적이고 평범한 가정이 곁에 있으니 그 외의 상황을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꽃밭만 바라본다 해서 항상 아름다운 광경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너희가 바라보지 못 한 반대쪽에서는 오히려 정상적이고 평범한 가정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