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6일 화요일

새벽 3시에 우울한 상태에서 조커를 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

 오늘 새벽 2시 반경에 악몽을 꾸고 한참동안 울기 직전의 상태에서 기분 전환을 하려고 방법을 찾아 보았다.


간단하게 웹서핑을 하면서 유머 자료를 구경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해도 되었겠지만 그냥 조커를 보기로 했다.


약간의 우려는 있었다. 우울한데 우울한 영화를 보면 더 심해지는게 아닌가 하고.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아서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올리며 눈물을 흘려 분장이 번지고, 불량 청소년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심리 상담사가 펼쳐 본 공책에 내 삶이 죽음보다 가치 있기를 라는 문장에서 울컥하고, 버스 안에서 기분에 상관없이 웃는 병이 도지는 장면과 망상 장애를 가진 부모를 수발하는 장면이 나올 때 정말 버티기 힘들었다.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싶을 정도로.

 

그런데 그 다음 씬. 아서가  머레이쇼를 보며 감정적 몰입이 선을 긋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나는 아서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서는 동경하는 사람이 있다. 머레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같은 층에 사는 여자 주민인 소피 듀몬드, 그리고 망상장애가 있다.


반면 난 동경하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따라서 진심으로 지지를 보낼 사람도 동경 할 사람도 믿을 사람도 사랑 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아서와 선을 그을 수 있었다. 아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부분은 나와는 다른 이유니까.


그리고 난 아직 망상장애는 없다.


덕분에 그 뒤부터는 일사천리로 감정의 기복 없이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아서가 금융인 3명을 쏘아 죽일때는 참 편했고, 웨인 부부가 죽을때도 돌고 도는거지 라고 생각했으며, 랜들이 죽을떄는 처음 이 씬을 보았을때랑은 느낌이 달랐다. 처음에는 갑자기?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은 갑작스럽긴 하나 상황만 보면 죽어 마땅하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머레이가 죽을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 그냥 올것이 왔구나 정도.



그렇게 조커를 보고 난 뒤 총알 탄 사나이3편을 봤는데 처음 봤을때랑 또 느낌이 달랐다.


처음 총알 탄 사나이3을 보았을때 너무 섹드립에만 매몰한다 라고 생각했었지만, 오늘 새벽에 보았을 때는 음소거를 한 상태로 봐서 그런지 상황 대부분이 많이 웃겼다. 기분에 따라서 감상이 너무 달라지는데 이거 참 애매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