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5일 토요일

애니메이션 유녀전기 1기 감상

 두가지 요소 때문에 감상을 원만히 할수가 없었다.


스포일러, 그리고 모순


일단 작품이 전하려는 메세지는 알것 같다. 신을 부정하는 합리,현실주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폭군에 가까운 신이란 존재의 무의미함,강제력,오만함, 그리고 전쟁이란 가혹한 현실속에서 인간을 구원할 생각조차 없는 무신경함을 꼬집으며 무신론적인 메세지를 던진다는거는 알것 같다.


그런데 그걸 전달하기에는... 허들이 너무 걸리적 거리지 않나 싶다.


일단 신이란 존재가 나타나서 주인공을 전쟁이 일어나는 세계에 보내버리고 주인공이 신앙심이란걸 가질때까지 괴롭힌다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둘 중 하나가 될 것이 뻔해진다. 주인공이 신앙심을 갖는다 or 주인공이 신의 압박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신앙심을 가지지 않는다. 즉 이 노선 어느쪽이든 주인공은 주인공인 관계로 작품이 끝날때까지 구를지언정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근데 문제는 이게 스포일러다. 아주 지대한 스포일러. 대놓고 작품의 방향성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스포일러. 그래서 주인공이 작중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그걸 보는 내 입장에선 뭐 어떻게는 해결 하겠지 라는 생각에 심드렁해질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 성격부터가 타인을 무시하는 성격이라 저 거지같은 성격이 변할리가 있겠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면 결국 작가가 할수 있는 이야기는 존재x라 칭한 신에게 반기를 든 인간의 발악이 주 내용일게 너무나 뻔하다.


둘째로 모순. 이 작품은 전개내내 무신론자가 신을 억지로 소재로 삼은 것 마냥 신과 관련된 모순이 너무 심하다. 일단 신이 말한 70억 인구를 관리하는것은 벅차다라는 발언에서 보면 70억도 무리인 상황인데 여기서 주인공을 다른 이세계로 날려버린다. 즉 주인공이 사는 현대사회의 70억+이세계의 인구가 더해지는거다.


그딴 짓을 왜 하지?


그럴 필요성이 있나? 지금 관리하고 있는 것도 벅차다면서 심지어 전쟁중인 세계로 보내버리면 전쟁으로 죽어나가는 인간까지 관리해야 하는데?


게다가 그 70억 인구중에 왜 하필 주인공이 신앙심이 없다는 이유로 전생을 시키지 않겠다고 하질 않나 주인공에게 신앙심이 생길때까지 갈구겠다며 이세계로 보내버리는데


그딴 짓을 왜 하지? 2


일개 한 인간을 가지고 세계에 변화를 주면서까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물론 그것이 신의 오만함과 무의미함, 무신경함을 꼬집는 의도라고는 해도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는 시점에서 이야기가 지극히 작위적이란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게다가 주인공은 신을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신이 말한 신앙심이 생기기 전에는 죽어도 전생시키지 않는다는 말을 믿고 죽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딴 짓을 왜 하지? 3


무신론자는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무신론자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 하는 애매한 인식은 무신론자라고 하기 어렵다. 물론 신이라 불린 존재가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그 위력 자체는 실감하긴 하겠으나 전생 시스템을 인정하고 그 힘을 남용하는 신이란 존재에게 저항하여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다는 점에서 신이란 존재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신이란 존재를 부정한다면 당연히 그가 관리하는 전생 시스템도 부정해야 마땅하다. 이것도 어느정도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는데 신이란 존재가 인간에게 무의미한 아무 쓸모없는 존재로서의 무신론적인 입장이라면 전생 시스템은 인정하나 그걸 자기 좋을대로 써먹는 관리자를 인정 못 하는건 이해할수 있다. 주인공이 필요에 의하면 규칙은 지키려는 성격이니 전생 시스템을 규칙의 일부분이라 이해했다면 그걸 남용하는 존재는 부정해도 전생시스템 자체는 경험 한 이상 부정하긴 힘들테니까.


하아아아아지만


이 작품이 신을 부정하는 의미에서 주인공이 빡세게 구르는 이야기였다면 수긍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고 주인공은 신에게 그다지 방해도 받지 않으며 오히려 방해를 하려던 기적이 주인공의 파워업요소가 되어 주인공이 고난을 헤쳐나갈 방법이 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은 작중 이야기 내내 기적의 95식을 가진 이후로 고난이랄것이 없이 계속해서 승전을 올린다. 그런데 여기에 주인공의 비뚤어진 성격이 강조되다 보니 점점 작품이 말하려는게 전쟁이란 참혹한 현실속에서 개심을 하게 하려는 주인공이 오히려 신을 부정하고 신의 구원을 바라는 존재들을 학살하는 와중에도 인간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도 않는 신의 무능함,무신경함,무의미함을 꼬집는게 맞는건지 몇십번을 갸우뚱하게 여길 정도로 애매하게 다가온다.


주인공도 나쁜 놈이고 신도 나쁜 놈이다보니 무신론적인 입장에서 인간승리를 추구한다 한들 결국 주인공도 나쁜 놈이니 어느 쪽이 승리하든 뒷맛만 찝찝하고 주인공이 압승을 연승하는게 아니라 사지에서 뒹굴며 겨우겨우 살아남는 인간승리같은 요소를 넣는다 하더라도 주인공이 나쁜 놈이니 그리 다행스럽게 느껴지지도 않고 어차피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 이야기는 이미 스포일러가 된 상태니 그리 긴장감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전쟁의 참혹함을 두고 주인공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꼬집기에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그리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전쟁이란 환경은 독하고 미친놈이 살아남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성격이 이상하고 비인간적인 주인공은 물론 행동이나 일 처리방식이 비인간적이긴 하나 결국 살아남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 생이요 인간성을 상실하는 곳이 전장이란 곳이기에 주인공의 성격은 원론적으로는 문제가 될 여지가 없다. 왜냐. 전쟁이란 아군을 죽지 않게 하고 적을 더 많이 죽이는 사람이 영웅이 되기 때문이다. 입장과 위치와 관점에 따라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예컨데 제갈량은 촉군에게는 구원자나 다름없고 든든한 존재이나 위군에게는 죽일놈이고, 사마의는 촉군에겐 벌레같은 놈이겠으나 위군에게는 누구보다 신뢰 할수 있는 존재나 다름없는 것처럼 전쟁은 어느 한쪽의 입장만으로 판가름 내릴수 있는 단순한 요소가 아니다. 그 점을 은하영웅전설은 어느 정도 보여주었는데 이 유녀전기는 그렇지가 못 하다. 더더군다나 주인공이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주인공이 태어날 나라를 선택한 것도 아니고 불가항력으로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에서 태어나 신이란 존재에 의해 전쟁의 피해를 입을수 밖에 없는 이상 주인공과 전쟁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이고 살기 위해서는 이겨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적을 섬멸해야 하는 지극히 명확한 상황이기에 주인공의 비인간적인 면모는 전쟁이라는 특수성을 무시하면서까지 문제시 될 정도의 요소는 되지 못 한다. 아무래도 평화에 찌든 일본이라 이런 인간성을 중요시하는 듯 하는데 휴전과 대립의 관계에서 강제적인 동원을 당하고 무능한 지휘체계와 군의 부조리함을 겪어 본 한국의 입장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자신이 살아 남을수만 있게 한다면 그게 명장이고 기댈수 있는 존재이기에 온도차이가 나지 않나 싶다. 물론 주인공의 성격이 그렇게까지 의지할만한 믿음직한 존재는 아니나,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공동의 목표와 더불어 아군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전쟁에서 지는 것이기에 일부러 아군이 죽어나가는 상황을 방치할 정도로 멍청한 지능은 아닌터라 그냥 내버려둘리도 없으니 성격의 좋고 나쁨과는 상관없이 이기는 편이 우리편이라는 점에서 확실한 전력임에는 틀림이 없다. 물론 그것이 전범국의 군인 입장이 되어야 하기에 그 또한 전범국의 국민인 일본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까다로운 조건들이 섞인게 문제다.


그러다보니 이야기는 보는내내 참 애매함의 극치를 달리게 된다. 주인공은 신에게 신앙심을 강요받는 것 치고는 고전하지 않으며, 주인공은 전범국 입장에선 매우 뛰어난 영웅이며, 오히려 전쟁의 피해자 입장에선 재앙이고 그 재앙을 불러 온 것이 바로 신이란 존재이기에 이 아리까리함의 연속성은 전쟁의 참혹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군의 부조리함, 잔혹함 등과 겹쳐 구역질 나는 내용으로 범벅되어 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이야기를 선두에 서서 전개하는 것은 30대? 40대인가의 성인 남성의 싸이코 패스같은 정신이 깃든 십대 소녀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끝도없는 아이러니함을 자아낸다.


그렇지만 역시 이 작품은 애매하다. 무신론적인 관점에서 이 신에게 반기를 든 존재는 신의 기적을 유감없이 사용하기에 신에게 기대지 않고 얻어낸 인간승리의 감취는 전혀 느껴지지 않으며, 주인공이 사이코패스적인 성격을 고치고 인간성을 되찾는 이야기도 전혀 전혀 아니기에 인간적이고 드라마적인 요소도 없다. 내용은 세계대전을 모방한 배경에서 군과 전쟁이란 점에만 깊이 들어가기에 작품의 내용은 온전히 전쟁물에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데, 하필이면 특별하게 가져온 소재가 마법이며 그 마법으로 하늘을 날고 마법 포격을 하고 적의 공격을 마법으로 막는... 다분히 작가편의주의가 넘쳐나는 요소로 란체스터 법칙은 어디로 갔는지 소수가 다수를 갈아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가 병사의 생과 사가 마법 능력의 차이에 달려 있으니 전쟁물로서의 깊이와 리얼리티는 개가 물고 가 버린 느낌이다.


차라리 신을 빼던지 아니면 마법을 빼던지, 둘 다 못 빼겠으면 전쟁을 빼던지 그랬어야 했을것 같은데 물론 그렇게 되면 마법요소가 가미된 세계대전물이라는 흥미요소가 사라질테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그렇게 이야기는 서로 공존하기 힘든 요소들이 서로 억지로 꿰여져 있는 느낌을 준다.


소설판은 애니와 달리 추가적으로 할애하고 있는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굳이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라 그냥 여기서 끝. 애니메이션이 2기도 있다고는 하는데 이 역시도 굳이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든다. 스포일러가 된거나 다름없다고 했듯이 결국 이야기는 주인공이 신에게 저항하는 이야기일거고 그 무대는 여전히 전쟁일 것이고 전개는 세계대전 내용일 것이고 흐름은 찝찝한 그대로일테니, 마법적 요소가 가미된 대체역사픽션물의 특징상 이런 장르,소재에 관심이 없는 나에겐 딱히 더 봐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전쟁물이란 점에서 애니메이터 중에 밀덕이 있는지 전쟁 자체는 스피디하게 속도감과 박력있게 잘 그려낸지라 상당히 공을 들였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왠지 좀 소름끼칠 정도로 과하게 공을 들였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제작위원회가 전쟁을 좋아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전범국 동맹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려고 그런건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