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8일 화요일

앤트맨과 와스프 감상

갑자기 땡겨서 VOD 구매. 블팬은 존나 가격 팍팍 떨어졌는데 역시 인기있는건 가격 잘 안 떨어지네. 더빙판 구매 할 까 싶었지만 인간 주크박스의 참맛을 즐기려면 자막판일것 같아서 자막판으로 구매.



일단 영화는 준수했다. 시빌워 이후로 스콧 랭의 행보를 보여주며 가택연금 2년의 기간을 잘 지켜서 사흘 남은 상황을 행크핌과 와스프가 억지로 끌고 감으로서 스콧 랭에게 위기를 주었고, 마찬가지로 행크핌과 와스프에게는 가족을 양자영역에서 되돌리기 위한 시간의 제한을 줌으로서 위기를 주었다. 그러한 행크핌과 와스프, 그리고 앤트맨을 둘러싼 고스트, 암거래상의 방해로 이야기는 흥미롭게 진행되어 간다.



하지만 살짝 아쉬운 점이라면 이 영화에서는 결정적인 빌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스트는 그저 자신의 몸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은 것 뿐이고 그 이상의 악당스러운 목표는 없었다. 암거래상은 그나마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기술을 탐하는 정도는 있었지만 앤트맨 1에서의 옐로 재킷만큼의 목표는 아니었다. 스케일이 달랐다. 야심의 스케일이.


앤트맨 1의 옐로 재킷을 막지 못 하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았을 뿐만 아니라 옐로 재킷 또한 강했는데, 앤트맨2의 암거래상은 앤트맨이 충분히 제압 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한 수준이었고 암거래상의 힘은 본질적으로 FBI와의 유착이라는 점에서 확고한 세력이 느껴지질 않았다. 심지어 앤트맨1은 앤트맨이 히어로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강한 적과 대치되었지만,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앤트맨은 더 이상 성장 할 필요가 없었고 와스프 또한 완전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렇듯 성장한 히어로가 둘이나 있는데 빌런은 임팩트가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앤트맨에겐 패널티마저 부여 함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긴장감은 오로지 스콧 랭과 행크 핌의 개인사정으로만 조절된다.


결국 앤트맨은 자신의 문제, 와스프 또한 자신의 문제만을 가지고 싸우기에 히어로? 라는 의문이 든다.


아이언맨2에서 위플래시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야욕은 없었지만 아이언맨에 대한 확실한 적개심으로 똘똘 뭉쳐 강한 적이라는 느낌이 있었으며 저스틴 해머는 걍 얼간이이긴 했어도 스크린에 보여지는 그의 이미지는 확실했고, 아이언맨이 패배하면 군수사업이 저스틴 해머로 넘어 갈 것이다 라는 것을 알기 쉬웠다.


사실 이 듀오 빌런 구조는 아이언맨2만이 아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도 쓰였다. 에고와 소버린의 개입으로 긴장감을 올리려 했었지만 가오갤이 더 악당 같은 모습에 에고와 소버린 역시 그다지 악당에 가까운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앤트맨과 와스프의 위기감은 그들에게 남겨진 시간을 건드리는 것에 국한되기에 결정적인 한방이 없는 것이 단점이다.


또한 앤트맨과 와스프로 양분된 내용에서 서로의 균형을 잘 잡지 못 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앤트맨1에서 스콧 랭은 행크 핌의 사정에 따라 그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휘말렸는데 앤트맨2에서도 마찬가지로 행크 핌 사정에 따라 휘말린다. 하지만 그 둘은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었는데 앤트맨1은 설령 행크 핌의 문제에 휘말리긴 했어도 대체로 앤트맨이 이야기를 주도했다.


그러나 앤트맨과 와스프에서는 그러지 못 했다. 앤트맨의 주도력은 떨어졌고, 행크 핌, 와스프 뿐만 아니라 스콧 랭을 감시하는 경찰과 스콧 랭을 도우려는 스콧 랭의 가족, 그리고 스콧 랭의 친구, 행크 핌의 이전 직장 동료, 심지어 마구잡이로 굴러다니는 연구소, 시빌워에 대한 반복적인 언급 등 정말 개미가 과자를 잘게 잘게 쪼개듯이 온갖 사람들이 나와 내용을 쪼개 먹고 있는 것이다.


와스프만 나와도 정신 사나운 이야기에 등장인물이 대거 난립함으로서 앤트맨의 지분은 감소했고, 덕분에 히어로 다운 이야기나 히어로 다운 진행이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앤트맨과 와스프가 재미가 없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재미는 있었지. 하지만 스토리 구성은 히어로 영화로서는 영 아니었다고 생각이 드는거다.


블랙 팬서도 그런 점에선 유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냥 집안 싸움이었으니까. 흑인이 무기 좀 쎈거 잡는다고 세상을 정복하겠다고? 긴장감이 결여되는건 당연하다.



히어로에게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칙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자기희생이다.

목숨보다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 온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히어로에 대해 공감하고 동경하며 전율한다. 그러한 가치를 보여주지 않는 히어로 영화는 앙꼬 없는 찐빵에 가깝다. 가오갤1이 보여준 자기 희생의 모습을 2에서 보여주지 못 하였듯이, 앤트맨 역시 1에서 보여주었던 자기 희생을 2에서는 끌어내질 못 하였다.


그래서 나는 앤트맨과 와스프를 히어로 영화로 생각 할 수가 없다. 오락 영화지 이건 히어로 영화는 아니다. 그런 감정이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떨어뜨리고 있는 듯 싶다. 내가 희극을 좋아하긴 하나 이처럼 오로지 희극에만 매달리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 하구나 라는 깨달음을 준 건 고맙긴 하다.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분량조절도 이상한 영화이긴 하나, 그럼에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점은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마이클 더글라스의 행크핌은 아내를 향한 마음, 딸을 향한 마음, 2대 앤트맨을 향한 마음 등 각각 뚜렷한 색을 보여주었고, 폴 러드의 앤트맨은 유쾌함을 통해 극의 분위기를 느슨하게 연결 해 주었다.



하. 근데 감상이 딱 요정도다. 영화 이야기가 너무 산만한데다 앞서 말했듯이 임팩트 있는빌런이 없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거의 없다. 그 왜 있잖아. 윈터솔져는 지꺼 아니라고 헬리 캐리어를 2대나 꼬라박았고, 아이언맨3는 아이언슈트로 돈지랄 불꽃놀이를 했고, 토르3는 아스가르드를 꼬치구이로 구워 먹었단 말이지. 닥스는 평생 수염난 남자 볼래 or 지구 포기할래로 협박했고, 인피니티워에서는 우주 절반을 네스퀵 분말로 만들어 버렸고, 홈커밍은 존나 데스스타를 박살 냈다고. 근데 앤트맨과 와스프는 뭐야? 기껏해야 쿠키영상에서 양자영역 한번 더 간거 밖에 더 돼? 본편에서 임팩트를 날려 줬어야 하는거잖아. 정작 쿠키영상도 결국 인피니티워에 의존한건데 앤트맨과 와스프만의 결정타가 없었다고.


재미는 있는데 재미만 있어. 딱 5점 만점에 3점 정도. 어지간한 마블 영화는 두번이상 보는데, 얜 딱 한번 보는걸로 충분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