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9일 일요일

소소하게 착한 것은 큰 의미를 지니질 못 한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착하게 사는 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는 않더라도 착하게 사는 것이 나름 의미가 있는 삶이었으면 하는 바램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착하게 사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불성실하고 태도가 나쁜 사람에게 이득이 돌아가고, 되려 착하게 사는 사람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 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사실 이걸 파고 보면 이해가 쉬운 것이 착한 선행을 하는 사람은 크든 작든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고, 이러한 선행의 틈을 파고 들어 이익을 취하는 얍삽한 사람들은 그런 손실로부터 이익을 챙기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즉 선행을 베풀면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 것인가? 부터 따져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이런 부분도 있다. 얌체같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가 봐야 선행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선행이 소소한 수준. 누구나 실천 할 수 있는 수준의 선행 역시 사람들에게 그다지 이미지가 각인되지 않는 점도 있다. 에이 그거 누가 못 해. 나도 한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렇게 다른 사람의 선행을 낮추어 보는 경향이 있는 한 소소한 선행으로는 그리 확고한 이미지를 전달 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미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착한 것을 포기하자거나 크게 기부하고 나머지는 되는대로 막 살자 라는 것은 아니다. 얍삽한 자들은 경계를 하고, 크게 감흥을 못 받는 자들에겐 전략을 달리하여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도 없을 때 선행을 어필하기 보다는 잘 감춰두었다가 필요 할 때 확 보여주는 식으로 말이다.


착하게 사는 것이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우직스럽게 선행을 일관해도 좋겠으나, 상당수는 선행과 더불어 인정도 받길 바란다. 인정을 받으려면 행위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증거는 다른 사람들이 확인이 가능해야 한다. 법정 싸움 같이 느껴지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판사요 검사가 아니겠는가. 스스로의 속내에서 서로를 재단하며 가치를 결정하기에 그러려면 확고하게 빼도박도 못 하는 증거가 제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늘어 놓자니 보는 사람은 기분이 나빠질 수 있겠지만 성실하게 착하게 살아온 당신. 걱정하지 말아라. 굳이 세간에 인정 받으려고 명함이나 이력서에 기록을 할 것이 아니라면 하등 상관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뭐 그래도 혹시 모르니 증거 한두개 쯤은 챙겨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