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8일 토요일

곰돌이 푸 다시 만나서 행복해 감상

 잔잔하게 기분이 좋아지고 미소짓게 만드는 영화. 하지만 살짝 아쉬운 점도 있다.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 크리스토퍼 로빈이 푸와 그 친구들과 헤어지는 송별회에서 시작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부모님이 기숙학교로 보내기에 푸와 헤어질 수 밖에 없는 로빈은 친구들과 헤어지길 아쉬워한다.

그런 로빈은 자라면서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어린 나이의 소년 가장이 되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게 되고, 전쟁이 일어나 군에 들어가게 되고, 가족을 위해 일을 하며 관리자의 위치에서 사람들을 해고 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 로빈은 가까운 시일내에 회사의 비용 절감을 끌어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속에서 가족과의 관계는 점점 망가지며 심적으로도 벽에 몰리게 되어 버린다. 

그러던 중 우연히도 곰돌이 푸는 친구들을 찾던 도중 로빈이 살던 곳과 연결되는 나무 구멍에 가까이 가며 로빈이 사는 집 근처로 나오게 된다. 회사일과 극성스런 이웃을 피해 의자에 앉아 한탄하는 로빈은 오랜만에 푸와 다시 만나게 된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여기까지만 하는데 어차피 이야기 하다 보면 더 누설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영화는 참 좋았다. 약간 미묘하게 정감가지 않는 푸나 피글렛, 티거 등의 그래픽이 마음에 들진 않았는데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이 되면서 푸의 캐릭터성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자 미묘하게 맘에 들지 않는 그래픽도 괜찮게 느껴졌다.

가장 좋은건 푸의 캐릭터성을 만드는 대화 내용이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미성숙하고 현명하지 않은 듯한 말들을 하는 듯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부드럽고 관용적이며 포용하는 말 하나 하나가 마음의 벽을 허물고 긴장감을 누그러뜨려 준다.

푸는 아이처럼 즐거워 하고 긴장감 없이 사고를 치고 짧게 고민하고 금새 넘겨버리기도 한다. 그런 푸의 행동이 시간이 부족하고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의해 매사 긴장해 있는 로빈을 건드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로빈의 부탁을 군말없이 받아들이고 따라주며 재촉하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고 더 묻지도 않으면서 로빈이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푸는 누군가와 다투지도 않고 대립하지도 않고 일부러 자극하려고도 하지 않기에 극중 벌어지는 사건들에 의해 긴장감이 고조되면서도 푸가 등장하여 대화를 하면 자연스레 긴장이 누그러드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비단 푸의 캐릭터성만이 아니라 크리스토퍼 로빈의 캐릭터성도 좋았는데 로빈은 푸와 재회하며 보이는 반응이 여타 다른 창작물과는 다른 모습이었기에 로빈의 캐릭터성을 상당히 고민하면서 만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봐 온 창작물에서 잊어버린 상상속 친구들을 대하는 모습들은 대체로 망각하고 부정하며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데 로빈은 푸를 대하는 모습이 그 셋이 아니었다.

처음 푸를 만났을 때 로빈은 자신이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헛것이 보인것으로 생각했지만 금새 푸의 말을 경청하며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있는 푸가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상태에서 로빈은 푸를 잊지도 않았고 부정하지도 않았고 거부하지도 않았다.

로빈은 푸와 친구들과 관련된 것들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다만 그 기억과 함께 로빈이 어른이 되면서 현실과 타협하고 수긍한 부분이 겹쳐지면서 친구들과의 괴리가 생겨난다.

어린 로빈은 푸와 친구들이 두려워하는 상상속 괴물인 헤팔럼을 함께 걱정하며 두려움을 떨쳐내게끔 도와주었지만 어른이 된 로빈은 헤팔럼은 없어라며 부정한다. 친구들과 공감을 하던 로빈이 어른이 되면서 공감과 멀어졌다는 것을 알수 있는 부분이다.

많은 컨텐츠에서 아이들의 말을 무시하는 꽉 막힌 어른 캐릭터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로빈의 서사에 타당성을 부여하여 납득 할 만한 근거를 보여준다. 바로 아버지의 이른 사망과 전쟁이다.

이 두가지는 허구의 분위기를 단숨에 현실로 끌어내는 막강한 요소다. 어린 아이에게 아바지를 잃은 슬픔을 부여하며 자연스레 보고 배울 롤모델을 무대에서 끌어내린다. 막중한 책임감은 아이를 억지로 어른스럽게 만들기 위해 분위기를 강요하기에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하여 닫힌 정신이 이루어지게끔 만든다.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것은 전쟁으로서 전쟁을 겪은 군인의 정신적 후유증과 고통, 슬픔, 공포, 허무함 등의 속성을 길게 설명 할 필요도 없이 전쟁이라는 한마디로 넘겨줄수 있게 만든다.

그렇게 고통스런 과거로부터 이제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을 하는 회사원 로빈이라는 캐릭터는 공감이 닫혀있는 캐릭터로서 그동안 자신이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해왔던 일들처럼 모든 현상들을 어쩔수 없는 해야만 하는 일로 받아들인다. 그 모습은 가족들에게도 똑같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어쩔수 없어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보이며 이는 가족과의 괴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로빈이라는 캐릭터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은 매우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로빈은 어른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들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푸를 대하며 가족,동료를 대하는 모습과는 다른 친구 푸를 대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로빈은 푸의 등장에 당황하고 부담스러워 하지만 그렇게 툴툴거리며 불만스러워 하는 와중에도 푸가 칠칠맞게 꿀을 묻히고 다니는 것을 쫓아 다니며 청소하고 푸가 난장판을 만든 것을 크게 화내지 않으며 바쁜 와중에도 풍선을 사달라는 푸의 요청을 들어주고 푸를 돕기 위해 헌드레드 에이커 숲으로 들어간다. 겉으로는 툴툴거리며 당장이라도 떨어지려 하지만 막상 푸와 함께 하는 동안에는 푸의 친구인 로빈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로빈은 헌드레드 에이커 숲에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푸를 찾고 그동안 느끼지 못 했던 감정들을 오랜만에 되찾는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사실 조금 불만이었던 것이 로빈과 푸의 관계에서 로빈은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에 힘들어하며 회사로 복귀를 서두르며 그 과정에서 티거가 사고를 치게 된다. 이 시점에서 푸와 그 친구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빈을 찾아가지만 실질적으로 이 인형같은 존재들만으로는 온전히 로빈을 찾아갈수 없으니 도우미의 힘을 빌릴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나타난 도우미인 가족에 의해 이야기는 자동적으로 가족애로 넘어가 버리고 만다.


내가 블랙위도우 감상에서 가족애를 어설프게 쓰면 캐릭터성이 가족애에 잡아 먹힌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이 경우가 그런 경우다. 로빈과 푸의 관계에서 가족이 개입하니 결국 이야기의 심화를 위해 가족애를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리 동물친구들은 뒤로 빠지게 된다. 영화 중반까지만 해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로빈과 푸였는데 가족이 개입되면서 그 둘의 우정이 일단은 뒷전이 되어 버리니 영화의 이야기를 끌어왔던 부분이 온전하게 제 모습으로 마무리가 안 되는것이다. 결국 로빈은 가족애를 재확인하면서 캐릭터성에 가족애와 함께 가족과 함께 하는 모습을 배분하게 되고, 푸는 로빈의 가족과 연관되면서 푸 역시 온전히 로빈과의 우정만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게 된다.


그래서 후반부 가족애 부분은 공을 들여서 끌어낸 우정에 비해 너무 전형적이며 뻔하고 단순한 구조를 지니게 되며 중반까지 깊게 파고들던 우정은 얕은 가족애와 세트로 묶여서 순식간에 도매급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가족애가 나쁘게 구리게 나온것은 아니다. 오히려 로빈이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을 푸와 친구들이 대신 전달을 하면서 로빈과 딸의 관계는 로빈이 직접적으로 언급을 하는 것 보다도 복잡한 로빈의 마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오랜 친구들에게는 거리낌 없이 털어놓을수 있었기에 더더욱 푸와 친구들은 뛰어난 전달자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로빈과 푸의 관계를 통해서 로빈이 깨닫게 되고 다시 푸를 찾아가고 관계를 회복했으면 싶었지만 이 가족애 요소 때문에 로빈은 깨달음을 가족으로부터 얻으며 푸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가까운 곳으로 터전을 옮기는 것에도  가족이 개입을 해 버리고마니 이야기의 끝맺음은 너무 상투적이고 전형적이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더빙은 과거 kbs의 성우진을 그대로 재현해내서 좋았고 변화점이 있다면 어른이 된 크리스토퍼 로빈의 성우인데 엄상현님이 로빈을 연기했기에 이 영화는 그 미묘한 느낌을 매우 잘 살려낸다.

작중 로빈은 성인이지만 푸와 친구들을 잊지 않으며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어릴적의 동심을 품고 있었기에 그 두가지를 표현 할 수 있어야 했다. 성인으로서 삶의 무게에 억눌리는 로빈과 과거의 추억을 상기하며 그때처럼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로빈. 그래서 엄상현님의 앳된 톤과 부드러운 연기가 성인이면서 아이같은 로빈의 모습을 잘 살려내었다. 이는 일본어 더빙도 그렇게 판단해서인지 일본의 로빈 성우의 톤과 연기도 앳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내고 있다. 근데 원판은 그게 힘들지. 다른 서양국가 더빙도 확인했으면 좋았겠지만 이젠 디즈니 플러스 구독 기간이 끝나는 시점이라 나중에나 다시 구독하게 될때 느껴볼수 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