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9일 일요일

온 워드 : 단 하루의 기적 감상

 지나친 미국식 레퍼토리에 번지수 잘못 찾은 변화구가 이상하게 꽂힌 영화.

걍 전체적으로 다 별로였다.


일단 기반 설정인 마법을 잊은 세상이라는 것은 판타지 인물에 시대적 배경을 현대 사회로 스킨을 씌워 뭔가 색다름을 보여주려 한듯 하다. 그런데 실제로 마법이 쓰기 번거롭고 과학이 사용하기 쉽다 하여 정말로 마법을 안 쓰게 되고 잊혀질까? 라는 가정의 뒷받침이 미흡하다. 과학은 어디까지나 편의적인 요소일 뿐, 마법에 비하면 그 힘은 단순하다. 작중에 보여지는 공중 부양 마법이나 위장 마법, 크기 변화 마법만 해도 이건 단순히 과학의 힘으로는 재현이 어렵다. 과학의 힘으로 능히 쉽고 편하고 간단하게 재현이 가능해야 마법이 외면 당할수 있는데 과학이 이룰수 없는 부분을 마법이 가능하다면 어째서 마법이 사라진다는것인지 그 논리적인 타당성이 전혀 없다.

요정의 날개며 켄타로스의 달리기만 해도 쓰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것도 어설픈데 날지 않다가 날기 시작한 요정들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계속 날아다니고 있다. 필요가 없어서, 왜 날아야 하는지 몰라서 안 한거 치고는 날기 시작하니 그냥 계속 날아다닌다. 능히 해낼수 있는 능력을 잃은것에 대한 합당한 설명이 안 된다. 켄타로스도 마찬가지, 아무리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지만 그쪽 동네는 올림픽도 없고 시합도 없나? 달리기는 생물의 다양한 행동들 중에서도 가장 근간을 이루는 움직임인데 켄타로스가 빠르게 달리는게 환상처럼 되어 버린것 역시 타당한 설명이 없다.

이 영화는 그렇게 현대적인 공간속에서 신비로움을 부여하려 하다보니 마법을 잃고 종족들이 본래 성질을 잃은 듯한 설정을 잡으며 영화의 다른 주인공인 발리가 그런 과거의 역사를 게임화한 테이블 롤플레잉 게임 매니아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기본 무대인 현대화 된 도시를 벗어나지 못 하기에 신비로움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 하고 있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 긴장을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인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단 하루만 불러낼수 있는 마법이 피닉스 젬의 문제로 인해 하반신만 불러내어 24시간 내에 다른 피닉스젬을 찾지 않으면 마법은 사라지고 두번 다시 쓸수 없다는 작위적인 설정이 너무나도 지나치게 스토리를 억지춘향으로 이끌어 나간다. 24시간의 제한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애타게 만드는건 유효한 방식이나 이를 유도하는 방법이 글러먹어서 모험이라는 이름으로 뺑뺑이를 돌리며 시간을 잡아 먹고는 짜잔 돌고 돌다 보니 우리 마을 안에 있었네요 라고 하니 긴장의 끈을 잡고 있던 관객에게 통수를 선사한다. 


그리고 이안과 발리. 극을 이끄는 이 두 주인공은 일단 지나칠 정도로 전형적이다. 어떻게?

이안은 소심하여 잘 표현하지 못 하고 항상 재수가 없고 잘 하는게 없는 불행하고 재수없는 소시민이다.

반면 발리는 눈치없고 계획없고 덜렁덜렁하고 자신의 주 관심사 외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 마이페이스적인 사고뭉치 캐릭터다.

이런 둘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보통 발리가 끌어나가고 이안이 쫓아가다가 반전이 생기는 편일텐데 이 이야기는 변화구를 이상하게 던지다 보니 이안이 끌어나가고 발리가 쫓아간다. 마법을 사용 가능한 이안이 없으면 극 중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이안이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않을수가 없게 만든다.

그렇게 성장형 주인공인 이안은 아버지를 불러내기 위한 모험을 통해서 목표로 하던 것들을 성취하는 성장을 이루긴 하지만 정작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소원은 이루지 못 한다. 가족애는 미국 영화에서 지겹도록 찾아 볼수 있는 흔한 레퍼토리이기에 어설픈 결말로는 감동을 주기 힘들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변화구를 이상하게 주다보니 정작 만나야 하는 사람이 만나지 못 하게 만들어 시원하게 해소되지 못 하는 찜찜한 결말을 낸다.

다른 주인공인 발리는 이안에 비하면 성장을 이루지 못 하는데 작품의 기반 설정인 마법을 잊은 세계에서 역사도 같이 잊어버렸기에 이안이 마법을 쓸수 있게 되고 역사속 모험을 재현하며 그가 철거를 막으려던 행동이 의미가 있는 것이 되었기에 그는 구제불능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스스로 바꿔냈다기 보다는 작품의 흐름에 떠밀려서 평가가 상승한 구조다. 이야기 마지막에 등장한 저주를 상대 할 힘이 없는 발리는 아버지와 짧은 재회를 떠넘기듯이 받을수 밖에 없다. 본래 다른 창작물 같았으면 이안이 아버지를 만나고 발리가 적과 싸웠을텐데 그 전형적인 형식에서 탈피하고자 준 변화구는 결국 스트라이크존에 제대로 꽂히지 못 하게 만든다.

볼 넷이면 주자를 내보내듯 컨텐츠에서 볼 넷이면 관객을 내보낼텐데 이 영화의 변화구는 계속 엉뚱한 곳으로 꽂혀서 하마터면 관객을 내보낼뻔 한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런 어설픈 변화구들 속에서 이안은 바라던 것을 이루지는 못 했지만 성장을 했고, 발리는 구제불능이라고 여겨지는 문제점인 무책임한 행동을 고치지는 못 했지만 자신의 애마인 자동차 귀네비어를 희생시킬 정도로 아버지를 만나려는 진심을 보여주고 동생과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파탄내는 글러먹은 형은 아니었기에 이 둘의 관계는 수많은 변화구 속에서 기본을 지켜주고 있다.


그렇지만 솔직히 영상미도 딸리고 독특한 맛도 딸려서 픽사 애니메이션으로서는 그저 그렇다. 픽사의 영화들이 대체로 현실기반에 허구를 가미한 것에 비해 이 영화는 허구에 현실을 대입하려 하다보니 신비로움이 퇴색되고 독창적인 구성도 잃어 전형적으로 미국스러운 점만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