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9일 일요일

이디오 크러시 감상

디즈니 플러스 구독 기간이 얼마 안 남아서 마구잡이로 보려 하다가 이 영화가 최근의 반지성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봤다.

결론적으로는 그냥 시간 낭비.

그냥 멍청한 인간들이 세상에 넘쳐나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떠올릴수 있을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사회 풍자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지 않다.

이 영화는 iq 60이 평균이 되어버린 500년 후 미래에서 냉동수면에서 깨어난 평범한 수준의 주인공이 겪는 문제를 통해 멍청한 사람들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풍자하려 하지만 문제는 영화의 구성이 풍자하려는 멍청한 사람들 수준으로 덜 떨어졌다는게 문제다.

작중 주인공은 병원-법정-교도소-코스트코-국회 순으로 이동하며 세상이 얼마나 덜떨어졌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멍청이들로 인해 의료,법치,정치,치안,경제가 무너진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멍청이들이 어떤 이유로 병원에 오고 멍청이들은 어떤 처방을 내리며, 바보들의 법정은 대체 무슨 문제와 무슨 법을 가지고 재판하는지, 멍청이들의 정치는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고 그 자리에 그저 멍청이를 놓고 반대편에 덜 멍청한 사람을 놓아두기만 한다.

코미디 이론에 비추어 볼때 이 영화는 풍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며 그저 우매함을 이용하여 우월성을 촉발시킬 뿐이다.

 영화는 오로지 주인공을 기준으로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해 500년 동안 운 좋게 이 멍청이들은 생존의 위기가 없었지만 때마침 식량문제가 위기라는 납득이 안 가는 작위적인 설정부터 도무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게 만드는데, 이는 상당수의 창작자들이 쉽게 범하는 오류인 작품의 세계관과 원인과 결과, 논리적 이유, 등장인물의 성격 등을 작품의 장르 성격이나 의도와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진 것이다.

작품에서 호러,서스펜스,코미디,액션,로맨스를 보이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작품의 세계 역시 장르에 맞춘 구성이 존재할 필요가 있다. 액션이면 추격자와 적대 세력, 로맨스면 사랑에 빠지는 상대와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 호러는 미지의 존재와 살인사건 등이다. 그러나 아무리 장르와 의도를 충족하기 위해서라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원동력인 원인과 결과와 세계관을 엉터리로 짜서는 안 된다. 아무리 로맨스를 끌고 나가고 싶어도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게되는 이유가 엉성하고 등장 인물들의 성격이 로맨스를 끌고 나가기에 걸맞지 않은데도 강제적으로 사건을 배치하고 엮어주려 해 봤자 납득할만한 원인과 결과, 세계관을 만든 것이 아니기에 당연히 몰입은 저해되고 결과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든다.

이 영화 역시 그런 우를 범하고 있다. 작품의 세계는 멍청이들로 가득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위기가 없다. 경찰들의 오발사격으로 비행기가 추락하고 의료가 붕괴되어 제대로 된 처방을 못 하고 밭에다 이온음료를 뿌려대는데 죽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굶는 사람도 없다. 평범한 주인공과 멍청이들의 대립구도 사이에 배치해야 할 타당한 사건들을 고의적으로 잘라내고 오로지 이 멍청이들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일에만 집중한다.

예로 이 작품의 세계에서는 이온음료 회사가 식수 공급을 담당하다 못해 경제의 대부분을 관장한다. 문제는 사람은 이온음료만 마시고는 살수 없다. 체내에 염분이 쌓여 신장 질환을 발생시키니 도저히 오래 살수 없는데 이 영화는 그런 기본적인 사실마저 멍청이들이 멍청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인지 아니면 감독이 그 당연한 사실을 몰라서 넘긴건지 도무지 알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허술하다. 이 영화에는 시청을 거슬리게 만들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구성들이 너무나도 즐비한데 그것을 단순히 코미디 영화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있다.

의료,법치,정치에 대한 묘사도 이와 마찬가지로 허술하다. 랩하는 판사와 프로레슬러 출신 대통령, 대마초 피우는 의사, iq60보다도 낮은 저능아 교육부 장관 등 멍청이들을 떼거지로 투입하지만 그래서 그들이 한 짓과 그로 인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허술하다. 이야기가 너무 허술하고 오로지 주인공을 괴롭히는데 치중되어 있다.

그런데 그 주인공마저 평범한 지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멍청하다. 주인공이 그나마 멍청이들보다 나은 점을 보이는 것은 교도소를 탈옥하기 위해 속여 넘긴 것과 밭에다 물을 주면 된다는... 점 외에는 이 사람이 정말 평범한 지능이 맞나 싶을 정도로 멍청하기 짝이 없다. 예로 이 주인공은 몸에 바코드를 새긴 이후로 몇번씩이나 바코드를 스캔 당해 추적 당하는 실수를 범한다. 바코드를 스캔 당해 들킨다는 걸 알게 되면 바코드 부분에 붕대나 뭔가를 감아서 숨기거나 바코드에 덧칠해서 걸리지 않게 할 것을 전혀 조치를 취하지 않아 몇번이고 같은 방법으로 들키고 만다. 오히려 같이 냉동수면에서 깨어난 모자란 매춘부 여주인공이 더 똑똑하게 보일 정도로 상황 대응력이 형편없다. 그것도 일반인이 아닌 군인이 일반인인 매춘부보다 모자라니 말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풍자가 기막히게 잘된 것도 아니다. 예로 쓰레기산은 냉동수면된 주인공이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 그때까지만 등장하고 그 이후로는 쓰레기산으로 대표되는 환경오염, 건강문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환경 미화등의 일들을 전혀 다루지도 않는다. 작중 멍청이들이 보는 tv화면의 대부분을 광고가 차지하는데 실제로 우리들이 겪는 광고는 화면 외곽을 차지하는 광고가 아니라 드문드문 영상 중간에 삽입되어 시청을 방해하는 것들 뿐이다. 모바일 게임도 심하면 30초마다 광고를 봐야 할 정도다. 진짜로 풍자를 할 거였으면 화면 전체를 광고 화면이 자리잡고 오른쪽 하단에 조그맣게 본방송이 나간다던지 30초 단위로 광고를 봐야 방송을 볼수 있다던지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상당수 많은 멍청이들은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고 멀쩡한 시간들을 버려가며 광고나 봐야 하는 무료 모바일 게임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멍청한 법정을 풍자 할 거였으면 판사와 배심원들이 멍청한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보여주어야 했는데 이 영화는 그저 주인공의 말투를 샌님이라며 조롱하는 단순함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이처럼 영화는 우리의 삶에 이미 침투해 버린 멍청함을 풍자하는게 아니라 단순히 낮은 지능의 등장인물들을 떼거지로 등장시켜 정형화된 하층민의 모습을 우매함으로 웃기려는 것 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만큼이나 영화 역시 멍청하기 짝이 없다보니 아무리 코미디 영화라는 장르적 허용을 감안해도 이 영화는 너무나 부실하고 허술하다. 오히려 영화인 이디오 크러시보다 더 짧은 러닝타임의 심슨 가족 에피소드에서 다루는 미국인의 멍청한 이유가 더 논리적이고 타당하게 느껴질 정도로 짤막한 애니메이션 에피소드보다도 더 허술하다.심슨 가족의 에피소드는 멍청한 미국인을 등장시키지만 각 에피소드의 성격과 주제에 맞춰 등장시키기에 주제의식에 집중한다. 그런 애니메이션 에피소드보다도 이 영화가 허술하게 느껴지는 점은 주제의식에 집중하는 방식이 잘못되어 있어서다. 멍청한 사람들을 비꼴거면 문제를 일으키고 사건이 커지고 그것을 수습해 나가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 이야기에서 문제와 사건과 수습과정은 멍청이들이 아닌 평범한 주인공의 위기에만 집중되어 있어 온전히 멍청이들의 문제에 집중하지 못 하고 수박 겉핥기처럼 슥 지나가고 끝이다. 감독이 문제의식을 얼마나 가볍게 취급하는지를 알수 있는 것은 장관이 된 주인공에게 산적해 있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부분에서 드러난다. 멍청이들이 정치를 하는 바람에 온갖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 문제들을 금새 잊어먹게 만드는 것은 주인공이 직면하는 위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에는 멍청이들이 일으킨 온갖 문제들이 존재하며 거론되나 정작 이야기는 주인공이 어떻게 살아남을지에만 집중하느라 제대로 보여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애초에 심각하게 다룰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멍청이들에게 500년 동안 위기가 찾아오지 않으면서 때마침 식량위기가 찾아온 허접하고 작위적인 세계로 구상하지도 않았을테니까.

그냥 이 영화를 보는 것 보다 심슨 가족을 보는게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