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4일 수요일

온라인 꼰대 주의보

나는 꼰대라는 말을 그리 잘 안 쓴다. 꼰대라는 단어가 비꼬는 뉘앙스가 들어가 있으며 이는 확고한 근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지나친 남용에 의해 스스로의 잣대가 무너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전 블로그인 이글루스에서도 대통령 욕은 숱하게 해도 꼰대와 관련된 글은 거의 쓰질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은 이전 블로그에서 꼰대라 불렀던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 한번 꼰대는 영원한 꼰대인가보다.



꼰대에 대한 이미지를 들어보자. 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자기중심적인데다가 타인에게 도와주지도 않을거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며 자기 좋을 부분만 내세우며, 자기만의 가치관과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한다는 점, 솔선수범도 못 하는 주제에 말의 앞뒤가 안 맞는 자가당착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 등이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에서 딱히 만나고 싶지 않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런 꼰대를 인터넷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참으로 잔인한 세상이다. 자기 가족이 아닌 이상 꼰대는 동네에서도 일주일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쉽게 볼 수 있게 된다.



"저도 14살 때 매우 멍청했어요. 제가 14살 땐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없었죠. 그러니까 전 멍청했지만 은밀하게 멍청했었던 겁니다."

과거에는 멍청한 짓거리도 한두번 볼까 말까 한 꼰대도 지금 시대에서는 매우 쉽게 볼 수 있다. 이 시대에서는 은밀하게 멍청한 짓거리나 꼰대 짓거리를 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꼰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자신이 틀릴수도 있다는 점을 절대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건드리면 건드릴 수록 더욱 시끄러워진다. 그나마 동네 꼰대라면 다들 쉬쉬 하며 저 인간 병신이야 라며 냅둬 버리겠지만, 온라인에서는 그렇지 않다. 꼰대를 공격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고, 대응하다 지쳐 쓰러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로 투입되는 전투요원들도 생기기에 온라인은 계속 뜨거워질수가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꼰대는 그나마 귀엽게 표현해서 꼰대라고 하는 것이지 엄밀히 말하면 사회 부적응자에 가깝다는 점이다.


본래 사람은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 적당히 맞춰 주고 넘어가려고 하는 편이다. 마찰이 적을 수록 자신에게 돌아오는 위험이 적고, 그렇게 안전하게 살아가는 편이 생존에도 도움이 되고, 사회를 유지하는데 이점이 되어 원만한 사회는 원만한 안전을 이끌어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꼰대는 그렇지 못 하다. 꼰대는 적당히 맞춰주고 넘어가고 그런게 없다. 다 자기 위주다. 처세술이 개판이라 누굴 맞춰주는 것도 못 하고 오히려 맞춰주길 바란다. 말로는 장유유서니 하며 삼강오륜을 읊지만 말과 행동이 따로 논다. 신뢰도도 바닥이다. 눈치도 없어서 싫어하는 사람에게 싫어하는 걸 디민다. 자기가 나이가 많다는 점을 이용해서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무례하게 대하며 어리다고 무식할거라 생각하여 자기가 알고 있는 틀린 정보를 강요하고 고치려고 하면 대놓고 무시한다. 도와 줄 것도 아니면서 오지랖이 심하다. 상대가 기뻐 할 일이 생겨도 찬물 끼얹듯 쿨병 걸린 척 폄하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살고 고치지도 못 하다 보니 주변에서는 배척을 당한다.


완벽한 사회 부적응자의 표본이다.


문제는 그 사회 부적응자가 적당한 위치를 지녔을 때의 문제다. 그렇다. 그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타오르는 장작의 주범인 자칭 음식 평론가 이야기다.


난 이전에 그 사람이 혼밥을 사회적 자폐라고 한 것에 대해서 반론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냥 지나가던 글쓴이가 인터넷에서 덧글을 적은 정도로는 굳이 반론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뭐지? 저 병신은? 정도로 치부하거나 그 덧글에 답글로 싸웠겠지.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단순한 지나가던 병신이 아닌 적당한 위치를 지닌 병신이었기에 충분히 다수의 공분을 사고 공격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덧글란에서 치고 박는 난장판이 아닌 그가 떠벌이고 다니는 것을 담는 매체마다 난장판이 되고 만다. 일개 덧글러의 덧글을 뉴스 매체가 다룰 일이 없듯이 그가 가진 사회적 위치를 제대로 추스리지 못 한 자의 결말은 논란만 불러 일으키고 좋은 이미지를 쌓지 못 하여 결국 그 사회적 위치마저 무너지고 마는 것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그 위치에 올려 놓은 것도 매체이고, 그를 떨어 뜨리는 것도 매체이다. 만약 매체들이 그의 개소리를 흔한 덧글러의 헛소리로 치부해서 다루지 않았다면 아마도 대중들의 관심을 크게 받지는 못 하였겠지만, 매체들이 그의 이야기를 다루어 적당한 위치를 주었던 것 처럼 마찬가지로 그의 헛소리를 매체들이 다룸으로서 다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대중들이 관여 할 수 있는 점이 극히 적다는 점이다.

매체의 영향력이 큰 반면 그 매체들의 자기검열과 자정작용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적절한 기준에도 못 미치고 자격도 없는 사람들에게 매체는 쉽사리 이미지와 위치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이슈에 따라 부풀리고 관심을 받으려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면피용 문구도 이렇지 않은가. 출연자의 의견은 방송의 입장과 다릅니다 라고 말이다. 그 출연자를 데려와서 메세지를 전달시킨 것은 매체임에도 그들은 전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도 숱하게 봐야 할 상황임을 암시하고 있다. 어설픈 사람을 매체에 출현 시키고 그의 말을 띄워 주었는데 그가 꼰대임이 밝혀지고 나면 대중들은 그 꼰대와 싸우지만 정작 그 꼰대에게 위치를 부여한 매체는 나몰라라 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시청률 하락이거나 대중들의 외면으로 돌아오겠지만 그러한 것도 출연자 교체로 메꾸면 무리가 없다.


사회 부적응자인 꼰대의 개소리와 책임감 없는 매체의 일방적인 메세지 전달 사이에서 대중들은 자연스레 피곤 해 질 수 밖에 없다. 오프라인 꼰대처럼 그냥 무시하고 안 보고 안 들으면 그만이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온라인 꼰대에게 불이 붙어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는 한 논란이 빠르게 수그러들긴 매우 어렵다. 결국 스스로 매체와 꼰대를 주의하여 거리를 두는 수 밖에 없다.


세상이 발전하여 거리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의견을 낼 수 있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거리에 상관없이 다양한 꼰대들이 일방적인 메세지를 강요하게 된 것은 웃긴 일이다.




그나마 스파이더맨에서 JJJ 이 양반의 뚜렷한 캐릭터성은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으면 설령 이전까지 지지했더라도 바로 철회하고 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인데, 온라인 꼰대들에겐 그런 캐릭터성 조차 없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

어떻게 보면 스파이더맨이 미리 내다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꼰대가 스피커를 잡고 매체가 책임감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를.